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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디펜스타임즈

걸작병기·2차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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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함 야마토(1)

[ 병기 비사 ]

 

일본 군국주의의 허망한 시대착오적 산물,
            전함 야마토( 戰艦 大和 )

해설 : 유진우


야마토는 구레 공창에서 건조될 당시 거함거포주의의 상징이자 일본의 상징이었다. 허나 제공권을 상실한 상황에서 자살적인 것이나 마찬가지인 텐고 작전에 동원된 결과 야마토는 함포가 아닌 어뢰와 폭탄 공격으로 격침되었고 생존자는 단 276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일본 군국주의의 마지막 발악이나 마찬가지였던 이 작전의 희생자들을 일본 당국은“산화”했다고 포장함으로써 스스로의 과실을 애써 무마하려 노력할 뿐이었다.

 

시작하며

  야마토( 大和 )!

 

  전함이나 일본 애니메이션을 좋아하는 일본인들에게 있어 대명사로 꼽아도 좋을 만큼 인기가 있는 함선일 것이다.


  그리고 그 인기에 걸맞지 않게 최후를 맞이한 전함의 대명사로도 꼽히는 것이 바로 야마토( 비록 폭탄 한방에 치명타를 입고 끝장난 BB-39 “아리조나”나 티르피츠에 비하면 좀 나은 편이지만 )라고 할 수 있다.

 

  아마 일본이 최고의 전성기( ? )를 구가하던 시절에 건조한 세계 최대급의 전함이지만 그 전함의 시대가 종말에 이르렀음을 스스로 입증한 장본인( 진주만 기습 및 프린스 오브 웨일즈호의 격침 )들에 의해 운용되었다가 결국 제대로 활약도 못해본 채 격침되었고 이것이 너무나도 억울한 지 애니메이션 우주전함 야마토로 부활시키려 애쓰는 모습을 보자면 시대를 잘못 타고났음에도 전함 그 자체로는 분명 일본 모델러들이나 전사 연구가들에게 상당한 흥밋거리를 제공하고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부분이다.

 

 

  어찌되었건 진수 당시 일본 조선기술력의 총결집체로서 세계 최대의 장갑두께, 가장 거대한 선체, 최대의 만재 배수량, 가장 강력한 주포 등 불멸의 기록을 남친 채 더 이상의 경쟁자가 등장할 수 없던 시절을 누리다 결국 절망적인 텐고 작전에 동원돼 격침되어 전설이 되었으니 어찌보면 패망 직후까지 생존했음에도 비키니 환초의 수소폭탄 실험 표적으로 동원돼 허망한 최후를 맞이한 전함 나가토에 비한다면 바다의 패자로서 가장 극적인 대우를 받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본다.

 

  최근 일본의 우경화와 신형 헬기모함 이즈모( 出雲 )등 과거 일본 제국해군의 영광을 되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마치 야마토의 진수를 연상시키는듯 하여 태평양 전장으로 시선을 돌리게 되었다.

 

  야마토의 태동

 

  1941년 12월 7일, 항공모함 <아카기, 가가, 히류, 소류, 쇼카쿠, 즈이카쿠>에서 발진한 대규모 함재기들이 진주만의 미 태평양 함대를 기습 공격한 일본은 항공기만으로도 강력한 전함들을 효과적으로 무력화시킬 수 있음을 입증해보였다.

 

  그러한 일본이 아이러니컬하게도 야마토와 같은 무지막지한 거대 전함을 3척( 물론 3번함 시나노는 미드웨이 패전 직후 항공모함으로 급거 개조되었지만 )이나 건조한 데는 우선 워싱턴 해군조약을 이해하지 않으면 쉽사리 납득이 되지 않을 것이다.

 

  정확하게는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 Treaty for the Limitation of Naval Armament )으로 호칭되는 이 조약은 1921년 11월부터 1922년 초까지 미국의 워싱턴에서 동시대의 강대국들이 모여 제1차 세계대전과 같은 비극이 재발되는 것을 저지하는 동시에 각국의 해군력 규모를 일정한 수준으로 유지시키자는 일종의 조율안과 마찬가지였다.

 

  이 조약을 통해 미국과 영국, 일본은 각각 전함 보유 비율을 5 : 5 : 3으로 확정함으로써 여기에 의거하여 미국과 영국이 각각 525,000톤/일본이 총 315,000톤에 해당되는 전함을 보유함에 따라 세계 3위의 전함 보유국 지위에 오르는데 성공했지만 이는 역으로 사실상 신규 전함의 건조가 불가능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했다.

 

  문자 그대로 군축조약이었으니 일본으로서는 기존에 건조 중이던 신규 전함들을 사실상 폐기하거나 다른 용도로 개조하는 수밖에 없었지만( 이 때 개조된 전함들 중 함선이 바로 진주만 기습 항공모함 “아카기”와 “카가”다 ) 러―일전쟁과 한일합방 및 제1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1920년대의 평화기로 인해 더 이상 군비팽창의 필요성이 줄어들어버림으로써 1935년까지 이 조약을 충실하게 지켰다는 점을 보면 다소 의아해할 분들도 있을 것이다.

 

  이는 미국이나 영국에도 해당돼 상당수의 신규 건조 중이던 전함들이 폐기되거나 개조되었고( 덕분에 미 해군은 렉싱턴급 순양전함의 건조를 취소하고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게 되어 세계 최대급의 항공모함을 보유하게 되었다 ) 단적인 예로 미국조차 조약 체결 이후 건조된 신형 전함은 뉴욕 해군조선소에서 1937년 8월 1일부터 착공한 BB-55 “노스캐롤라이나”와 필라델피아 해군조선소에서 건조된 BB-58 “워싱턴” 뿐이었다.

 

  이 때문에 1941년 12월 7일, 진주만 기습 당시 항만에 정박한 전함들이 대부분 건조된 지 2~30년이 경과된 것들이었고 그나마 함령이 적은 편에 속하던 BB-38 “USS 펜실베니아”( 자매함 BB-39 “USS 아리조나”는 너무 유명하니 생략하겠다 )가 1913년 10월에 착공되었고 BB-48 “웨스트 버지니아” 역시 1920년 4월 12일에 착공된 ‘21세의 청년’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의 여파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여하튼 주변국들의 해군력 사정이 이러한 마당에 굳이 전함 건조에 무리하게 집착하지 않고 기존의 건조 중이던 전함들조차 항공모함으로 개조하거나 폐기시키는데 전념하던 일본은 193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시금 군비강화의 칼날을 곤두세우기 시작했다.

 

  바로 독일의 베르사이유 조약 전면 폐기 및 무제한 군비 강화로 인해 촉발된 군비 경쟁으로 인해 굳이 무리하게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에 얽매이지 않으려는 경향은 미국과 영국이 아니더라도 사실상 해군을 육성하던 모든 국가들의 공통사항이었고 일본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그 결과 잠시 서류상에 기재된 채 무기한 보류되다시피했던 신형 전함의 개발과 건조 역시 슬슬 수면 위로 급부상하기 시작했다.

 

  아마 해군에 관심이 많은 분들은 이미 이 시기 항공모함과 함재기( 당장 일본만 해도 신규 전함 건조 대신 항공모함 건조에 집중한 결과 진주만 기습에 6척이나 투입할 수 있을만큼 세계적으로 만만치 않은 항공모함 대국이 된 마당이니 )의 발전이 눈부실 정도가 되었음은 익히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또한 제1차 세계대전을 통해 그 위력을 발휘한 어뢰를 항공기에 탑재하여 직접 수상함을 공격하는 방식 역시 꾸준히 연구가 지속되었고 미국의 SBD “돈틀레스”, 영국의 소드피쉬( Swordfish )나 일본 해군 항공대의 97식 함상공격기로 현실화 되었다는 것 역시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마당에 사실상 항공기의 대규모 공습에 취약한 전함을 대거 개발하고 건조한다는 사실에 다소 황당해할 분들이 많으실텐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당시 각국 해군 수뇌부의 공통된 통념은 “해전의 주역은 전함이다”였고 미국과 더불어 항공모함 대국인 일본 해군 자신조차 “항공모함은 워싱턴 조약의 제약으로 인한 [ 꿩 대신 닭 ]에 불과하다”고 툴툴대는 판이었다.

 

  따라서 서서히 각국의 해군력이 팽창될 조짐을 보이는 마당에 일본이라고 가만히 있을 턱이 없었고 그 결과 워싱턴 해군 군축조약으로 중단되었던 신규 전함 개발이 재개되었다.

 

  1920년대 초반까지 일본은 8.8 함대 확보안( 8척의 전함과 8척의 순양전함을 확보하는 안 )에 의거해 개발 중이던 신형 전함의 안건을 보다 개량하고 구체화한 결과( 계획 번호 A-140으로 시작한 안건은 1936년 7월까지 무려 23개에 달하는 계획안이 검토될 정도였다 ) 설계 번호 A-140F5가 1936년 7월에 채택되었는데 이 설계대로 건조된 것은 역사상 유례가 없는 ‘괴물’이었다.

 

  비록 크기는 계획이 전면 취소된 13호 순양전함( 전장 274.32m, 전폭 32.4m, 흘수 9.75m )보다 다소 축소되었지만 그 축소된 크기조차 당시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괴물급이었으니 바로 “야마토”급 전함의 등장이었다.

 

  야마토급의 등장은 일본 역사상 최초로 서류상으로 끝나지 않은 세계 최대급의 전함을 바다에 띄웠다는 점에서 자부심을 표출하기에 충분할 수 있었겠지만 반면 일본 국력의 한계 역시 충분히 표출했다는 점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8.8 함대 확보안이 추진될 당시에도 일본 해군은 자국의 조선기술력과 규모만으로는 도저히 미국이나 영국의 상대가 될 수 없다는 것을 너무나도 뼈저리게 체감하는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미국이라면 본토에 산재한 다수의 해군조선소에서 전함들을 대거 건조-취역시켜 수적인 우세를 확보하면 충분했겠지만 일본은 건조되는 전함에 강력한 화력과 장갑을 두르면서도 빠른 기동력까지 부여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단순한 순양전함인 13호급이 274.32m라는 무지막지한 전장과 460mm 주포를 갖춘 것만 봐도 당시 일본 해군의 열세가 얼마나 명백했는지 알 수 있다 )

 

  1930년대가 되어도 이 격차가 도저히 좁혀들지 않았음을 확인한 일본은 결국 미국의 대규모 전함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 총 27척을 운용했다 )과 맞붙어 포격전을 벌이더라도 무조건 이길 수 있는 “무적전함”의 확보가 절실했고 덕분에 야마토급은 세계에서 유례를 찾을 수 없는 괴물이 될 수 있었다.

 

  먼저 크기와 배수량에서 동시대의 전함들이 따라올 수가 없었는데 비록 전장은 13호 순양전함보다 단축된 263m였지만 전폭은 38.9m, 흘수 10.4m로 아이오와( 전장 270.43m, 전폭 32.97m, 흘수 11.33m )가 취역하기 전까지 ‘괴물’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그 위용이 만만치 않았다( 자동차를 예로 들면 쌍용의 체어맨H와 현대의 그랜저 HG를 비교해 보는 정도가 된다 )

 

  여기에 배수량은 13호 순양전함과 비교가 불가능했는데 우선 기준 배수량만 65,000톤이었고 만재 배수량은 72,809톤으로 독일의 비스마르크( 50,995톤 )나 미국의 노스 캐롤라이나급( 40,258톤 ), 아이오와급( 57,256톤 )을 완벽하게 능가하는 수준이었다.
  야마토급이 등장하기 이전까지 일본 해군의 기함이었던 나가토( 43,580톤 )를 능가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무장 역시 거대한 덩치와 배수량에 걸맞게 최강이었는데 8.8함대 확보안 당시 개발되던 수준에 그쳤던 45구경장 460mm 주포를 총 9문 탑재함으로써 비록 제원표상이었지만 비스마르크의 52구경장 381mm 주포 8문을 꼬맹이로 전락시켜버렸고 아이오와급의 Mk.Ⅶ 50구경장 406mm 함포로도 쉽사리 덤비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2019년 10월29일 23시3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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