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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항공모함의 태동과 태평양전쟁


[ 전사 속 비화 ]

 

아시아 최강의 전력, 일본 제국해군 항공모함

 

해설 : 유진우

 

2015년 8월에 진수된 헬리콥터 모함 DDH-184 “가가”.

 

초기 일본 제국해군 항공모함으로 활약한 가가의 함명을 물려받은 이 신규 모함의 존재는 아직 이빨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았지만 태평양 전쟁 패전 이후 다시금 항공모함 보유를 시도하고 있는 일본의 속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한 단면이라 할 수 있다.


 시작하며

 

  오늘날 자국 영해를 지키는 수준의 자위대( 라고 하지만 어지간한 국가의 정규해군보다 우세한 전력을 가진 )를 보유한 일본이지만 공식적으로 덴노의 항복선언 이전까지 그들이 보유했던 해군전력, 특히 항공모함 전대는 아시아 국가들 중 유일했으며 아마 오늘날에도 이 기록을 깨기가 사실상 어려운 수준이었다.


  아시아 지역 해군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규모, 그것도 다양한 톤수의 항공모함을 자체 건조하여 운용했고 진주만 공습을 성공시킨 주역 중 하나였으며 이후 레이테 해전에서는 유인용 미끼의 임무까지 그야말로 일본 제국해군의 흥망사를 함께 영위한 일본의 항공모함에 대해 간략하게 알아보자.

 

  시작은 꿩 대신 닭?

 

  일본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섬나라라는 특성상 바다의 중요성을 누구보다 잘 파악하고 있는 국가로 일찍이 해군력 양성에 힘을 기울여왔다.


  그 결정체가 바로 연합함대로 1941년 진주만 공습 직전까지 동원된 전력 중 중요한 비중을 차지한 것이 바로 아카기, 가가, 히류, 소류, 쇼카쿠, 즈이카쿠로 대표되는 6척의 항공모함이었다.


  당시 항공모함들을 이처럼 대규모로 모아 투입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었는데 총 387대의 각종 함재기를 탑재한 이들의 활약으로 미 해군은 2,403명의 전사자와 다수의 함정을 손실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고 말았다.


  이는 당시 전함들 간의 결전을 통해 승패를 결정짓는다 여겨졌던 해전의 상식을 완전히 뒤집어 엎어버린 것으로 이후 미국의 적극적인 항공모함 대량 건조를 촉발시켰다.


  그런데 우스운 점은 이처럼 새롭게 해전의 주역으로 떠오른 일본 제국해군의 항공모함들이 사실은 군축조약의 부산물인 이른바 “꿩 대신 닭”이었다는데 있었다.


  1921년 11월 11일부터 1922년 2월 6일까지 미국의 워싱턴 D.C에서 개최된 <워싱턴 회의>안에 포함된 각국 해군의 군비축소에 관한 조약, 이른바 워싱턴 해군군축조약을 통해 각국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냈다.

 

  ① 전함 1척의 배수량은 35,000톤 이하이며 주포는 16인치 이하로 제한한다.
  총 보유 톤수 비율은 미국과 영국이 50만톤, 일본 30만톤,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17만 5천톤을 배정받는다.


  ② 항공모함은 개별 척수당 기준 배수량 27,000톤이나 2척에 한정해 33,000톤의 예외를 허용한다.
  주무장은 8인치( 203mm ) 이하의 함포로서 152mm 이상의 구경을 탑재할 경우 127mm 포는 10문 이하만 허용한다. 단 33,000톤급은 8인치 이하 함포 8문 이하로 제한한다.   총 배수량은 미국과 영국 13만 5천톤, 일본 8만 1천톤, 프랑스와 이탈리아 6만톤


  ③ 순양함은 1척당 기준 배수량 1만톤 이하이며 총 배수량은 제한이 없으나 함포는 127mm 이상 203mm 이하만 허용한다.

 

  총 보유 비율은 영국과 미국이 5, 일본 3, 프랑스 및 이탈리아 각각 1.75로 당시 신형 전함 8척과 순양전함 8척을 보유한다는 88함대( 훗날 일본 해상 자위대의 88함대 계획과 유사 ) 확보안을 추진하던 일본 제국해군에게는 마른 하늘의 날벼락과도 같은 일이었다.


  당연히 일본은 이에 대해 항의했고 결국 비율이 재조정돼 영국과 미국이 52만 5천톤, 일본이 31만 5천톤으로 소폭 향상되었지만 여전히 만족스럽지 못한 수치였다.


  더욱이 이 과정에서 완공을 앞둔 신예 전함 무츠( 陸奧 )의 폐기를 저지하려다 되려 미국과 영국의 신형전함 건조를 인정해주는 바람에 오히려 전함 보유 비율에서 열세에 놓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또한 이 조약의 체결 이후 10여년간 신규 전함의 건조가 사실상 중단되고 기껏 이뤄진 것도 조약으로 결정된 총 배수량 내에서 구형 함정을 대체할 신형함의 건조로 한정된 탓에 영국의 넬슨, 프린스 오브 웨일즈와 같이 철저하게 해당 제한 항목을 준수한 이른바 “조약형 전함”이 탄생하는 계기가 되었다.


  다만 ②항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항공모함은 전함에 비해 비교적 양호한 제한을 받았기에 일본은 원래 순양전함으로 기공 중이던 아마기급 2번함 “아카기( 赤城 )”와 폐기가 결정되었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남은 전함 “가가”( 2번함 ‘도사’는 결국 표적함으로 최후를 맞이했다 )가 항공모함으로 개조되었다.


  그러나 문제는 당시 일본 해군은 항공모함을 자체적으로 건조해본 경험이 전혀 없었고 거의 최초의 자체 건조 항공모함이라 할 수 있는 호쇼( 鳳翔 )는 숫제 영국의 기술지도가 있었기에 보유가 가능한 정도였다.


  더욱이 건조 중이던 전함을 항공모함으로 개조하는 것은 당시 미국과 영국, 프랑스조차 최초로 시도하는 안건이라 아무런 기술과 노하우가 없는 일본의 조선 기술로는 참고할 사항조차 전무한 셈이었다.


  이 때문에 일본 해군은 별 수 없이 당시 영국이 동일한 방법으로 시도하고 있던 퓨리어스의 2단 갑판을 참고해 아카기와 가가의 비행갑판을 3단으로 배치하고 주무장으로 8인치 포를 탑재하는 우스꽝스러운 몰골로 공사에 착수했다.


  이리하여 아카기가 1927년, 가가가 1928년에 준공되어 취역했지만 앞서 언급한 3단 비행갑판과 지나친 중무장은 여러 문제점을 야기시키기에 충분했고 특히 가가의 경우 연돌의 위치로 인해 인근 선실의 온도가 40도를 넘어가는 등 이런저런 불만 사항이 속출했기에 1934년, 신속히 개장공사에 착수할 정도였다( 아카기는 1938년 착수 )


  반면 1933년에 준공된 소형 항공모함 류조는 처음부터 제대로 된 근대형 항공모함으로 설계된 덕분에 항공기 적재용 엘리베이터, 바람막이, 착함 제동장치 등 아카기, 가가보다 더 우수한 장점들이 많았고 이는 이후 일본 해군의 후속 항공모함 건조에 중요한 기술적 기반을 제공했다.


  이렇게 초반부터 시행착오를 겪던 일본 해군의 항공모함 건조는 1936년에 착공, 1939년에 완공된 히류( 飛龍 )와 소류( 蒼龍 )에 이르러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가기 시작했다.


  두 함정은 전함에서 개조된 아카기나 가가보다 배수량과 크기에서 부족했지만 대공무장은 오히려 아카기보다 더 뛰어났고 전반적인 함재기 운용능력도 한층 더 나은 편이었다.


  하지만 아카기와 가가 역시 근대화 개장공사에 착수, 불편한 3단 비행갑판을 평갑판형으로 개장하고 지나치게 강력한 8인치 주포들을 철거해 중량을 경량화함으로써 보유 함재기의 수 증가와 항행속도의 개선을 이룩했다( 가가의 경우 개장 전 25노트였던 것이 개장 후 28.3노트로 증속 )


  여기에 1936년 1월 5일자로 워싱턴 해군군축조약을 일본이 전면 폐기시키며 탈퇴까지 하자 해군의 건함 계획은 급진전돼 진주만 공습 직전까지 쇼카쿠와 즈이카쿠가 준공, 전력은 급격히 상승하기 시작했다.


  중일전쟁에 참전한 일본 연합함대의 함정들과 더불어 함재기 조종사들의 기량 역시 급상승했고 덕분에 태평양 전쟁 개전 직전까지 일본 해군 조종사들의 기량은 아시아에서 최고 수준의 경지에 이르고 있었다.


  또한 히류급을 기초로 보다 개량된 중형 항공모함인 운류와 자매함 아마기, 가쓰라기의 건조 계획과 더불어 훗날 미드웨이 해전에서의 참패로 주력 항공모함 4척을 손실하는 막대한 피해를 입게 되자 비행갑판의 방어력을 향상시킨 다이호의 건조가 이뤄지기도 했다.


  또한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항공모함이라 할 수 있는 시나노가 건조되었지만 이 항공모함은 불과 10여일만에 어뢰 공격으로 격침됨으로써 태평양 전쟁 기간 중 유일한 단명함( 短命艦이 ) 되는 불명예도 동시에 얻었다.


  어찌되었든 시작은 일단 꿩 대신 닭에 가까운 존재였고 당시 어느 나라 해군과 마찬가지이며 쓰시마 해전의 승리를 통해 대함거포주의에 사로잡혀 있던 일본 해군 수뇌부는 이 항공모함을 그리 못미더워하는 분위기였다.


  그러나 미국과의 개전을 반대한 유일한 장성이었던 야마모토 이소로쿠 대장은 항공모함을 주력으로 하는 기동부대를 편성해 진주만 공습을 성공시켜 이런 분위기를 가라앉히는데 일조했다.

 

  일본 항공모함의 특징

 

  오늘날 미국이나 영국, 프랑스의 항공모함이 그러하듯 일본의 항공모함 역시 당시에는 격납고를 중심으로 상부의 비행갑판, 하부의 선체로 구성되어 있었다.


  그 중 가장 중요한 전력이라 할 수 있는 함재기가 탑재되는 격납고는 크게 밀폐식과 개방식으로 나뉘었는데 당시 미국이 개방식, 일본은 밀폐식을 채택하고 있었다.


  밀폐식 격납고는 일단 구조강도를 확보하는데 있어 대단히 유리하고 특히 항행 중 외부의 해상으로부터 발생하는 각종 기상이나 파도 등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이점이 있었다.


  덕분에 내부에 수납된 함재기들이 염분으로 인해 부식되지 않고 해수에 젖지 않으면서 자연 정비요원들도 육상의 기지 정비고와 마찬가지로 안정된 환경에서 작업을 수행할 수 있는 보너스까지 누릴 수 있었다.


  하지만 이 격납고는 2층으로 이뤄져 있어 각 층의 높이가 겨우 5m에 불과했고( 층을 지나치게 높일 경우 자연 선체가 너무 높아져 복원력[ 復元力 ]이 떨어지는 문제점이 발생 ) 이는 점차적으로 대형화되는 함재기의 적재와 탑재수량에도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격납고 주변이 온통 폐쇄되는 바람에 통풍, 환기에 제한이 따랐고 자연 내부에서 화재나 유폭이라도 발생한다면 이를 배출시킬 방법이 없었다.


  반면 미국은 개방식을 채택함과 동시에 비행갑판의 강도를 강화해 방어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단순한 1층 격납고를 채택함으로써 오히려 일본 항공모함보다 격납고 높이가 더 높아짐과 동시에 내부 폭에서 우위를 차지하게 되었다.


  덕분에 탑재기 수도 오히려 일본 항공모함을 능가하는 등 전쟁 기간 중 대량 건조된 에섹스급 항공모함들은 이후 항공전과 해전에서 일본 해군을 압도하는 원동력이 되었다.


  자연스레 더욱 대형화되는 함재기의 수납도 쉬워졌고 설령 폭탄이 갑판을 관통해 폭발하더라도 그 폭발압력을 측면의 개방된 공간으로 배출시키기 용이해 2차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었다.


  물론 최근 미국의 원자력 항공모함들은 밀폐식을 채택하고 있지만 태평양 전쟁 시점에서는 분명 개방식이 상당히 유리한 것이었다.

 

  진주만 기습의 성공과 미드웨이

  1941년 12월 7일, 총 387대의 함재기를 적재한 항공모함 6척을 중심으로 한 기동부대가 진주만을 기습공격함으로써 태평양 전쟁이 발발, 전함 중심의 미 태평양 함대는 혹심한 타격을 입었다.


  그러나 이후 전력을 재정비한 미 해군과의 미드웨이 해전에서 되려 주력 항공모함 4척을 손실하는 대패를 당하자 일본 해군은 앞서 언급한 것처럼 탑재 기체수의 감소를 감안하고서라도 방어력을 향상시킨 다이호를 건조시키는 한편 보다 개선된 중형 항공모함 운류급을 건조시켰다.


  이후 야마토급 3번함으로 건조 중 항공모함으로 개장된 시나노의 경우 미국 항공모함처럼 수직 연돌을 채택하는 등 상대의 강점도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였지만 이미 기울기 시작한 전세를 되돌릴 수는 없었다.


  더욱이 다이호와 시나노는 잠수함의 어뢰 공격으로 격침됨으로써 항공모함의 위협이 단순히 적 함재기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입증시켰다.


  일본 해군 항공모함의 극적인 최후는 바로 레이테 해전 당시 미끼 역으로 참전했다가 결국 격침당한 즈이카쿠로 이후 패전 직후 패잔병 수송함으로 활약한 뒤 고철로 해체된 호쇼와 가쓰라기보다는 그래도 전투함으로서의 임무에 걸맞았다 할 수 있다.

 

마치며

 

  오늘날 일본 제국해군만큼의 위상은 아니지만 여전히 아시아권에서 손꼽히는 해군전력을 갖춘 일본 해상자위대는 이제 헬리콥터 모함( DDH )이라는 미명 아래 휴우가급과 이즈모급을 건조해 각 호위대군의 기함으로 운용하기 시작했다.


  1번함 휴우가와 2번함 이세는 이미 제3, 4 호위대군의 기함을 맡고 있고 이즈모급 1번함 이즈모 역시 제1 호위대군에 배치되었으며 2번함이자 2017년 3월 취역한 가가 역시 제2 호위대군에 배치된 상태다.


  이들 함정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미국의 와스프급과 같은 강습 상륙함의 임무를 수행하는 것으로 보이겠지만 마음만 먹으면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주변국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일본 제국해군 시절만큼은 아니지만 한때 아시아 최고의 항공모함 대국이었던 일본인만큼 이들의 해군력 증강은 결코 우리에게 좋은 일은 아닐 것이다.

  

2019년 10월30일 00시3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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