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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위령탑



3월 
27, 28일 兩日(양일)간 천안함 유가족과 함께 전몰장병 위령제에 다녀왔다. 인천 연안여객터미널에서 백령도까지는 35노트로 운항하는 초고속 여객선으로도 4시간이 걸렸다. 유족들은 전날 대전 국립묘지에서 천안함 3주기 행사를 마치고 올라온 터라 배 안에선 모두 잠들어 있었다. 유족 가운데는 故 민평기 상사의 모친 윤청자씨도 보였다. 흰머리가 더 많아 보였다. 마음 속에선 유족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여로(旅路)에 지친 유족들의 얼굴을 보니 쉽게 말을 건넬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같이 동행했던 해군 관계자도 인터뷰는 안하는 것이 좋겠다고 충고해 주었다. 사실 무슨 말부터 해야 할지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저 마음과 마음으로 통할 뿐이었다.

인천 연안부두를 출발한 여객선은 소청도와 대청도를 거쳐서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 백령도에 도착했다. 현지에는 벌써 각 방송사 취재진들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인근 해병부대에 들어서 점심을 간단히 하고 바로 백령도 천안함 위령탑을 향해 갔다. 2010326일 천안함 폭침 장소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곳에 위령탑이 세워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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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령도 천안함 위령탑. 천안함 폭침 현장에서 2.5km 떨어진 곳에 세워졌다

피격현장에서 2.5km 떨어진 위령탑에서 거행된 참배행사에는 해군 관계자와 당시 천안함 함장, 승조원을 대표한 9, 유족들 약 60여 명이 참석해 46용사들의 숭고한 희생을 기렸다.

최윤희 해군참모총장의 추모사는 이범린 해군 인사참모부장이 대독(代讀)했다.

천안함의 영웅들이시여! 사랑하는 조국의 바다를 지키기 위해 생사고락을 같이 하던 천안함을 부여잡고 운명을 같이 한 46용사들이시여! ‘출항!’을 외치던 그대들의 우렁찬 목소리와 적을 향해 함포를 겨누던 매서운 눈초리를 떠올리며 우리는 다짐하고 또 다짐했습니다. 다시는 적들의 침범을 허용하지 않겠노라고,” 


추모사는 계속 이어졌다.

이제 우리는 저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꽃앞에 엄숙하게 맹세합니다! 청사에 길이 빛날 영령들이시여, 이제는 바다를 지키는 수호신이 되어 사랑하는 조국과 남아 있는 가족, 전우들을 굽어 살피소서.”

추모사와 함께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유가족과 승조원 대표 등이 차례로 분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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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하는 최원일 천안함 함장

공식 추모식이 끝나고 유가족들은 위령탑 아래 천안함 46용사의 얼굴이 동판으로 새겨진 곳으로 모였다. 유가족들은 동판의 얼굴을 어루만지면서 또 한 차례 눈물을 흘렸다. 감정이 한차례 걸러진 유가족들의 소리 없는 눈물이 더욱 애잔하게 전해졌다. 추스러진 감정도, 자식의 얼굴 앞에선 여지없이 무너지는 것을 보았다. 함께 했던 다른 기자들 역시 같은 감정을 느꼈다고 한다.

천안함 피격 장소가 바로 보이는 절벽 앞에서 자식을 나라에 바친 어머니는 아들의 이름을 목 놓아 불렀다. 카메라 앵글을 맞추고 있는 나의 손이 떨려왔다. 그 어머니는 한동안 그렇게 아들의 이름을 부르고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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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의 이름을 목놓아 부르는 유가족



바로 뒤엔 전투복을 입은 중령 한분이 하염없이 바다를 바라보고 있었다. 바로 천안함 함장 최원일 중령이었다. 아무 말도 아무런 표정도 없이 그저 그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모습이 무든 것을 말하는 듯 했다. 최원일 함장은 아마도 2010326일 이후 전혀 움직이지 않은 듯 했다. 그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어야 비로소 시간이 흐를 것처럼 보였다. 그에게 복수의 기회를 주는 것이 천안함 전몰 장병을 위해 최선의 방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카메라를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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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폭침현장을 바라보고 있는 천안함 승조원

북한의 공갈보다 줄어든 관광객에 더 속상한 백령도주민 

 

저녁에 감기기운 때문에 약국에 들렀다. 약사에게 슬쩍 물어 보았다.

북한이 또 도발하겠다고 하는데 걱정되지 않으세요?”
걱정은 무슨 걱정입니까? 죽고 사는 것은 하늘의 뜻인데 걱정한다고 됩니까?”

우문현답(愚問賢答)이었다. 천안함 폭침 이후 백령도의 전력(戰力)은 대폭 증강되었다. 여기저기에서 해병대원의 모습과 군용(軍用)차량이 보였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들은 재잘거리면서 친구들과 어울리고 있었다. 다만 상인들은 북한의 공갈(恐喝) 때문에 관광객이 줄어들어서 속상하다고 하였다.

백령도의 행정구역은 옹진군 백령면이다. 현재 인구는 약 5천명으로 백령면 자치 홈페이지엔 기록되어 있다. 백령도는 북한 땅과 거리는 불과 10km. 북한의 장여군에서 약 10km, 장산곳에서 15km떨어져 있다. 그런 백령도가 북한 땅이 아니라 우리 땅이 된 이유는 백령도가 38도선 이남(以南)에 있기 때문이다. 휴전협정 때 육상의 군사분계선이 현재 휴전선이 되었다면 해상의 분계선은 38도선으로 유지했기 때문에 백령도는 우리 땅이 되었다. 만약 백령도가 38도선 이북(以北)에 있었다면 백령도는 굶주림의 섬이 되었을 터이다.

백령도는 삼국시대부터 군사 교통의 요충지였다. 백령도는 삼국시대엔 고구려에 속했다. 군사협력을 구하기 위해 당나라에 갔던 신라 김춘추가 고구려 水軍의 요격에 걸려서 죽을 뻔 했었다. 바로 백령도 인근 해상이었다. 삼국시대에 백제나 신라가 중국으로 가기 위해선 백령도를 거쳐 가야 했다. 백령도를 누가 차지하느냐에 따라서 황해도 해상권이 좌지우지 되었다. 현재 백령도는 대한민국이 차지하고 있다. 그래서 황해의 제해권(制海權)은 우리 대한민국에 있다. 그만큼 백령도는 중요하다.

<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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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전몰장병의 얼굴을 동판으로 세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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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위령탑의 현장 요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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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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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윤평기상사의 모친 윤청자氏(우)- 위로금 1억을 방위성금으로 희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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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리없이 우는 유가족. 보는 이로 하여금 더 눈물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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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가족과 천안함 전몰장병 얼굴 부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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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06월03일 08시3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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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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