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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그다드 스트라이크


Title: 전사연구 이라크전 (1) 

       The Baghdad Strikes


글/김대영

 


전문

 2003년 3월 19일 워싱턴 시각으로 오후 10시 15분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을 시작으로 제2차 걸프전인 이라크 자유작전(OIF)가 시작되었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의 대국민 연설이 있기 전 이미 이라크 자유작전은 시작되었다. 미군과 연합군의 특수부대들은 워싱턴 시각으로 오후 1시경 이라크 영내의 작전목표들을 향해 진입을 시작하였고 지상전의 주역인 미육군 제3보병사단과 미해병대 제1해병사단의 공병들은 지상군의 순조로운 이라크 진입을 위해 이라크군이 쿠웨이트 국경에 설치해 놓은 장애물들을 조심스럽게 제거하고 있었다. 이와 함께 공중에서는 사담 후세인과 그의 일족들을 제거하기 위한 작전이 진행되었다. 미CIA(중앙정보국)와 백악관 그리고 미국방부와 미중부군 사령부가 연계된 이 공습작전은 이라크 자유작전 기간 내내 우리들의 귓속에 맴돌았던 단어“Target of Opportunity”즉 가능성 있는 목표물을 제거하기 위한 최초의 작전이었다.

 

 

DB-록스타스
 이라크 전이 시작되기 8~9개월 전인 2002년 7월 중순경 미CIA의 공작팀 2개조가 터키를 경유하여 이라크 북부산악지대로 잠입하였다. 이들의 목적은 전쟁개시에 앞서 후세인에게 반감을 가지고 있는 이라크내의 쿠르드족을 규합하고 이라크 내에 미CIA의 정보망을 구축하는 것이었다. 미CIA 암호명 DB-록스타스(Rock stars)로 명명된 이들의 공작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이전에는 볼 수 없었던 놀라운 성과를 거두기 시작했다. 불과 얼머전까지만해도 미CIA가 자랑하는 최상의 이라크인 첩보원은 후세인에 불만을 가진 이라크 육군 장성의 조카라며 남미 한 국가의 미대사관을 제집 드나들 듯 하는 자가 고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DB-록스타스는 미CIA에게는 난공불락이라고 여겨졌던 후세인 정권을 지탱하는 핵심기구 즉 공화국 수비대와 후세인의 장남 우다이가 이끄는 게릴라 민병조직인 사담 페다인과 이라크 정보부 및 특별 보안기구까지 공작원을 심는 성과를 거두었다. 전쟁개시일이 임박해질 무렵 이들의 정보망은 후세인의 위치를 실시간에 가까운 정도로 파악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

 

도라농장 그리고 백악관
 3월 19일 워싱턴 시각으로 오전 10시 15분경 미CIA의 본부가 위치한 랭글리에서는 DB-록스타스가 보고한 후세인 관련첩보를 위성사진을 통해 확인하던 중 후세인의 은신처로 예상되는 바그다드 남동쪽 티그리스 강변에 위치한 도라농장에 심상치 않은 움직임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도라 농장의 야자나무 아래 자그마치 36대의 경비요원 수송용 차량이 서있었던 것이었다. DB-록스타스가 랭글리에 보고한 첩보에는 도라농장에 후세인의 경호원들이 음식과 기타 생필품을 저장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오후 12시 30분 DB-록스타스로부터 결정적 첩보가 랭글리로 날아들었다. 후세인은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대략 8시간 전 도라농장을 떠났고 저녁에는 도라농장으로 돌아와 두 아들 쿠사이, 우다이와 함께 취침하기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첩보는 미CIA 국장인 조지 테닛에게 보고되었고 그는 곧장 백악관으로 향했다. 한편 DB-록스타스의 정보를 수시로 확인하던 미국방장관 럼스펠드도 사항의 긴박성을 인식하고 백악관으로 향했다. 백악관에 도착한 조지 테닛 미CIA국장은 워싱턴 시각으로 오후 4시경 이러한 첩보를 부시 미대통령에게 보고 하였고 한편 백악관에는 이라크전과 관련된 미행정부의 고위급 인사들이 속속 도착하기 시작했다. 백악관내 미대통령 집무실인 오벌 오피스로 주요인사들이 모이면서 이번 기회에 후세인을 제거하자는 쪽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하지만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이것은 단순히 후세인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이라크전의 개전사실도 공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3월 17일 조지 W 부시 미대통령 자신이 사담 후세인에게 준 48시간이 아직 지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해볼만한 일이었다. 만약 후세인을 잡는다면 인명피해 없이 전쟁을 일찍 끝낼 수 있고 만일의 경우 그를 놓치더라도 그에게 확실한 메시지를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사담 후세인에게 사형선고가 내려졌다는 확실한 메시지 말이다. 이와는 별개로 오벌 오피스 안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어떤 무기로 제거할 것인가를 놓고 얘기가 오고 가고 있었다. 마이어스 미합참의장은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을 15~17기를 이용한 공습안을 제시하였지만 DB-록스타스의 첩보에 의하면 사담 후세인의 은신처가 벙커로 확인됨에 따라 벙커를 완벽하게 파괴할 수 있는 2000 파운드짜리 대형 폭탄을 투발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했다. 결국 낙점된 것은 F-117 전투기였다.

 

촉박한 시간
 백악관이 긴박하게 돌아가던 그 시간 지구 반대편 사우디아라비아의 합동항공작전사령부(CAOC)도 이라크 자유작전의 개시일이 코앞에 닥치면서 이후 충격과 공포로 알려질 대규모 공습작전을 준비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사우디아라비아에 위치한 합동항공작전사령부는 이라크전 기간 동안 미해공군과 연합군의 항공작전을 총괄하는 사령부로써 이라크 공습과 관련된 전반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있었다. 공식적인 공습작전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바그다드 시간으로 3월 20일 새벽 미중부군 사령부로부터 불연 듯 이들에게 새로운 임무가 떨어졌다. 바그다드 시내에 은거한 벙커를 공습할 F-117 전투기를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잠시 후 합동항공작전사령부는 F-117 전투기들이 전개하고 있는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 F-117 전투기 2기를 언제든지 출격 가능한 상태로 준비하라는 명령이 하달된다.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의 F-117 전투기 조종사들은 다음날 시작될 공습에 앞서 각자에게 주어진 공습 목표물의 비행계획을 숙지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도 잠시 이들에게는 긴급을 요하는 특별한 임무가 주어졌다. 그것은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는 임무였다. 불과 15분만에 2기의 F-117 전투기에 폭탄이 장착되었고 미중부군 사령관인 프랭크스 대장이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준비가 완료되었음을 백악관에 알린다. 이때까지도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은 결정을 못 내리고 있었다. 하지만 일출 전 F-117 전투기를 이라크 영공에 들여보냈다 이들을 다시 빼내기 위해서는 늦어도 워싱턴 시각으로 저녁 7시 15분 전까지는 최종결정이 내려져야 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데드라인 3분전인 7시 12분 조지 W 부시 미대통령은 최종결정을 내리고 2기의 F-117 전투기는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의 활주로를 떠나 바그다드로의 바쁜 발걸음을 내디뎠다.

 

 

산 넘어 산
  바그다드 시각으로 새벽 3시 38분 F-117 전투기는 바그다드를 향해 출발했지만 너무 긴박하게 결정된 작전이라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우선 작전이 새벽이 진행된다는 것이 가장 큰 부담이 아닐 수 없었다. F-117 전투기의 이름이 Night Hawk(밤 매)라는 데서 알 수 있듯이 F-117 전투기는 야간공습을 주 임무로 하는 기체였다. 그러나 카타르에서 바그다드까지는 편도로 2시간 이상이 소요되었고 F-117 전투기가 바그다드 상공에 도착해 공습을 시작할 무렵에는 바그다드에는 슬슬 동이 틀 무렵이었다. 비록 F-117 전투기가 스텔스라는 마법으로 레이더를 속일 수는 있지만 밤이 아닌 이상 사람의 육안이나 기타광학장비에는 이 마법도 소용이 없었다. 또 한가지는 F-117 전투기에 장착된 EGBU-27 유도 폭탄도 골칫거리였다. 강화형 페이브 웨이Ⅲ 이중 방식 GPS/레이저 유도 폭탄이라는 다소 긴 이름을 가지고 있지만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존의 페이브 웨이 Ⅲ 레이저 유도폭탄에 GPS/IMU 즉 전지구 위치 체계 시스템과 관성 항법 장치를 추가한 유도 폭탄으로써 지난 1999년 나토의 유고연방 공습작전의 연합군 작전(Allied Force)의 교훈을 반영하여 개발된 신형 유도 폭탄이다. 베트남전을 시작으로 걸프전까지 페이브 웨이 레이저 유도 폭탄은 정밀 유도 폭탄의 대명사 같은 존재였다. 하지만 연합군 작전에서는 신통치 않은 전과를 보여주었다. 산악 지형이 대부분인 유고슬라비아에서는 종종 목표물 상공에 심하게 안개가 끼거나 낮게 구름이 깔리는 현상이 발생하였는데 이때 페이브 웨이 레이저 유도 폭탄은 조사된 레이저 광선을 찾지 못해 폭탄 투하가 불가능하거나 혹은 목표물이 아닌 다른 곳에 유도되어 오폭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고자 기상에 영향을 거의 받지 않는 유도체계인 GPS/IMU를 새롭게 추가한 것이다. 무결점의 환상적인 유도 폭탄이었지만 이들 폭탄들은 공습 하루 전날 카타르의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 배달되었고 불과 6시간 전에 미 본토의 에드워드 공군기지에서 F-117 전투기의 운용이 인증된 무장이었다. 결국 실전에서의 사용은 이번이 최초인 셈인 것이다.

 

 

날으는 암살자들
 여러 가지 문제들이 산적해있었지만 작전은 계속 진행되었고 F-117 전투기들은 바그다드를 향해 날아가고 있었다. 이들의 앞길에 가장 큰 장애물이었던 이라크 남부지역에 설치된 비행 금지 구역의 이라크 방공망은 작전이 개시되기 일주일전 연합군 항공기들에 의해 말끔히 제거된 상태였다. 이것은 이라크 자유작전의 공습작전을 원활하게 하기 위한 사전조치였다. 또한 30여대의 연합군 항공기가 2대의 F-117 전투기가 이륙하기 전부터 이라크 상공에 전개하여 이들 전투기들을 몰래 바그다드로 들여 보내기 위해 이라크군의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한 광범위한 기만작전을 수행하였고 연합군이 보유하고 있는 단 2대의 EA-6B 프라울러 전자전기도 이륙하여 이들의 작전을 지원하였다. 하지만 바그다드로 향하는 2대의 F-117 전투기에 탑승하고 있는 조종사들은 다소 혼란스러운 상태였다. 혼란의 가장 큰 원인은 작전의 지속여부였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이번 작전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아래 진행된 작전이었다. 만약 중지명령이 떨어진다면 기지로 다시 돌아가야 할 판이었다. 그러나 F-117 전투기들은 일반적으로 작전 중 무선침묵 상태에서 임무를 수행했고 이륙하기 전 항공기에 탑재된 통신장비들을 테스트할 충분한 시간을 갖지 못했다. 만약 기기들이 고장 난 상태라면 중지명령이 떨어지더라도 알 수가 없었다. 또한 F-117 전투기에는 이러한 임무에 적합한 고도의 보안성이 요구되는 통신체계도 탑재하고 있지 않았다. F-117 전투기들은 총구를 떠난 총알과 같은 형국이었다. 이라크 상공에서 KC-135 공중급유기와 랑데부 한 F-117 전투기들은 공중급유를 받는 사이 KC-135 공중급유기에 인터콤에 접속하여 작전의 지속여부를 확인 받을 수 있었고 공중급유 완료 후 2대의 F-117 전투기는 각기 산개하여 목표물이 있는 바그다드 상공으로 진입하기 시작하였다. 이때 바그다드 상공에는 해가 서서히 뜨기 시작하였고 바그다드 시내의 스카이 라인이 조종사의 눈에 들어 왔다. F-117 전투기들이 바그다드 상공에 도착했지만 바그다드의 기상상태는 좋지 않았다. 바그다드 시내는 잔뜩 흐려 있었고 시내에는 낮게 구름이 깔려 있었다. 그러나 새로 장착된 신형 유도 폭탄을 시험하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조종사들은 재빨리 장착된 EGBU-27 유도 폭탄의 유도모드를 레이저에서 GPS/IMU 모드로 전환했고 바그다드 시각으로 새벽 5시 30분 2대의 F-117 전투기에 장착된 4발의 EGBU-27 유도 폭탄이 사담 후세인이 잠자고 있을 것이라고 예상되는 벙커에 투하되었다. “Bombs a Way”와 함께 투하된 4발의 EGBU-27 유도 폭탄은 낮게 깔린 구름 층을 통과하여 벙커에 수직으로 떨어졌다. 거대한 폭음과 함께 벙커는 순식간에 박살이 나버렸고 F-117 전투기들은 바그다드 시내를 살며시 빠져 나갔다. F-117 전투기들이 바그다드를 빠져나갈 쯤 걸프해역의 미해군 함정에서 발사된 40여 발의 토마호크 순항 미사일이 이라크의 광활한 사막을 넘어 도라농장에 떨어졌다. 또 한번의 거대한 폭발이 도라농장을 엄습했다. 이때까지 이라크군의 대공포는 침묵하고 있었다.

 

 

절반의 성공
 F-117 전투기들이 이라크 영토를 빠져 나와 공중급유를 받고 기지로 돌아올 무렵 영국 스카이 뉴스의 이라크 특파원은 바그다드 시내에 거대한 폭발이 있었다는 뉴스를 긴급히 전세계에 타전했다. F-117 전투기들은 4.5시간의 작전시간 끝에 그들의 둥지인 알 우데이드 공군기지에 안착했다. 작전은 성공적이었다. 목표물은 완벽히 파괴되어버렸고 F-117 전투기들은 무사히 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특히 이번 공습작전에 최초로 사용된 EGBU-27 유도 폭탄은 기존의 F-117 전투기의 주요 무장이었던 GBU-27 유도폭탄을 대체하였고 미공군 자료에 의하면 전쟁기간 동안 98발의 EGBU-27 유도 폭탄이 사용되었으며 이 중 11발만이 레이저 모드로 유도되어 사용되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번 공습작전으로 사담 후세인이 정말 죽었는지는 알 수가 없었다. 몇 일 뒤 사담 후세인은 이라크 공영방송에 모습을 드러냈고 출연한 사담 후세인의 진위여부에 대한 논란이 있었지만 그가 살아있다는 쪽으로 결론이 났다. 결국 이번 공습작전은 절반의 성공에 그쳤다. 하지만 사담 후세인을 공습으로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전쟁기간 동안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

 

 

다시 찾아온 기회
 이라크 자유작전이 19일째로 접어든 2003년 4월 7일 월요일 이라크 자유작전의 주력인 미육군 제3보병사단과 미해병대 제1해병사단은 이라크 쿠웨이트 국경선을 넘어 기나긴 행군 끝에 어느덧 바그다드 시내 외곽까지 이르렀다. 미육군 제3보병사단은 바그다드 외곽에 위치한 사담 국제 공항을 점령하였고 미해병대 제1해병사단은 바그다드 외곽을 흐르는 나흐르 디얄라드강을 건너 바그다드 시내로 진입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마련하였다. 한편 이라크 남부의 영국군은 이라크 제2의 도시인 바스라를 완전하게 점령하기 위한 최후의 작전을 펼쳤다. 바그다드 시내 외곽은 미군에 의해 포위된 형국이었고 바그다드 시내로 진입하는 주요고속도로와 간선도로도 미군에 의해 차단되었다. 바그다드 시내로의 미군의 진입은 이제 마지막 초읽기에 들어갔다. 바로 이날 사담 후세인을 제거하기 위한 또 한번의 공습작전이 바그다드 시내 한복판에서 진행되었다. 사담 후세인과 그의 일족들을 제거하기 위한 최초의 공습작전이 실행된 지 3주 후 또 한번의 기회가 찾아왔다. 2003년 4월 7일 미CIA에 의해 긴급히 입수된 첩보에 의하면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의 최고위층들이 바그다드 시내 모처의 레스토랑에서 회의를 갖는 다는 것이었다. 다시 한번 워싱턴과 미중부군 사령부는 술렁였고 또 한번의 공습작전을 실행할 것이냐의 여부를 놓고 토론이 이어졌다. 47분 여간의 토론 뒤 공습작전은 허가 되었고 이번에는 B-1B 폭격기가 임무를 맡게 되었다. 이라크 자유작전 기간동안 총 11대의 B-1B 폭격기가 오만의 투멧 공군기지에 전개하며 임무를 수행하였다. 이들의 통상 임무는 2000 파운드 상당의 GBU-31 JDAM(통합직격탄) 24발을 탑재하고 이라크 서부상공을 초계비행하며 이라크 서부에서 작전중인 미군의 특수부대에 의해 요청되는 긴급표적들에 대해 폭격을 가하는 것이었다. B-1B 폭격기의 경우 폭격임무 가운데 36퍼센트만이 사전에 계획된 것이었고 나머지는 비계획된 긴급표적에 대한 폭격이 주였다. 이날도 B-1B 폭격기 1대가 이라크 서부지역에서의 초계활동을 벌이고 있었고 임무 교대를 위해 또 다른 B-1B 폭격기가 오만의 투멧 공군기지를 떠나 이라크로 향하고 있었다.

 

 

Big One을 제거하라
 닉네임 Search and Destroy(수색과 격멸)로 불리는 이 폭격기는 사담 후세인에 대한 첩보가 입수된 지 35분 뒤 CAOC로부터 Big One을 제거하라는 명령을 하달 받는다. 여기서 Big One이란 사담 후세인과 이라크의 최고위층을 말하는 것이었다. 자세한 표적정보는 이라크 상공에서 활동중인 E-3 AWACS(공중조기경보통제기)로부터 전해졌다. B-1B 폭격기는 즉각 초음속으로 바그다드를 향해 비행을 시작했고 CAOC는 이들의 임무를 지원하기 위해 공중급유기 1대와 바그다드 시 내외곽의 방공방을 제거하기 위해 EA-6B 프라울러 전자전기 1대 F-16CJ 전투기 2대를 현장으로 급파하였다. 또한 종합적인 전장관리는 E-3 AWACS가 맡도록 했다. 이로써 공습작전에 필요한 스트라이크 패키지가 긴급히 형성된 것이다. 이라크로 향하는 B-1B 폭격기의 기내 안에서는 임무에 필요한 각종 절차들이 수행되었고 NIMA(국가영상 및 지도국)가 제공한 바그다드 시내의 각종 영상과 지도들은 정밀한 표적정보를 제공해 임무 수행에 많은 도움을 주고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사용될 폭탄에 문제가 있었다. B-1B 폭격기에는 총 24발의 GBU-31 JDAM이 탑재되어 있었다. GBU-31 JDAM은 2000 파운드 MK84 범용폭탄에 JDAM 키트를 장착한 것으로 정밀성과 파괴력에서는 사담 후세인을 골로 보내기에 충분한 물건이었지만 문제는 사담 우세인과 이라크 최고위층이 있을 곳으로 예상되는 레스토랑은 바그다드 시내의 인구밀집지역에 있었다. 임무를 성공하더라도 부수적인 민간인 피해가 클 것이라는 예상이 들 수 밖에 없었다. 결국 B-1B 폭격기의 WSO(무장운용사)가 아이디어를 내놓은 것은 총 4발의 GBU-31 JDAM을 사용하되 2발은 일반적인 GBU-31 JDAM을 사용하고 나머지 2발은 신관을 25밀리 세컨드(25/1000초)로 지연시킨 모드로 사용하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사용될 경우 GBU-31 JDAM은 파괴력은 1000 파운드급 MK83 범용폭탄의 위력을 갔지만 오히려 관통력은 증대된다. 바그다드 상공에 근접한 B-1B 폭격기는 아음속으로 순항속도를 조절하였고 와해된 바그다드 시내의 방공망은 침묵했다. 목표물 상공에 다다른 B-1B 폭격기는 4발의 GBU-31 JDAM을 투하하였다. 투하된 4발의 폭탄은 목표물에 정확히 명중하였고 임무를 부여 받은지 12분만에 B-1B 폭격기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였다. B-1B 폭격기는 이라크 북부로 기수를 돌렸다. 티그리트에 위치한 이라크 군의 지대공 미사일 기지를 파괴하라는 새로운 명령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작전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이번에도 후세인은 목숨을 부지하였고 8개월 뒤 2003년 12월 13일 티크리트의 지역의 농가에서 미군 SOCOM(특수전 사령부)와 미CIA의 SOG(특수작전팀)이 연합한 121 특임대에 의해 초라한 모습으로 체포되었다.
                    
 

 

 
                             
  

 
             

 

 
     
 
 

   

 

 

 

 

 

 

  

2013년 07월10일 01시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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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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