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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 고지전투


·일전쟁 발발, 근대적인 요새의 위력을 체감하는 일본군

 

 

 

 

190428, 연합함대의 뤼순항 기습 공격으로 발발한 러·일전쟁은 초반 일본군의 우세 속에 진행되었고 쓰시마 해전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구로키 다메토모 대장의 제1군이 압록강을 돌파해 서진하는 한편, 오쿠 야스카다 대장의 제2군이 러시아 극동함대의 방해를 받지 않고 무사히 랴오둥 반도에 상륙해 극동함대가 갇혀있는 뤼순을 향해 진군을 개시했다.

하지만 526, 뤼순 외곽의 금주성과 남산에 대한 공세에서 제2군의 공격제대는 야전 축성의 달인이라 불렸던 콘트라첸코 소장의 지휘 하에 벼락치기 공사지만, 견고하게 축성된 러시아군의 요새로부터 쏟아지는 포격과 M1893 맥심 중기관총의 탄막 세례를 받아 무수한 시체더미로 변해버렸고, 이와 같은 난항은 제4 보병사단장 오가와 마다쓰구 중장이 기지를 발휘해 간신히 극복할 수 있었다.

오가와 마다쓰구 중장은 포병대의 집중 포격으로 러시아군의 진지를 뒤집어엎은 후 보병의 육탄돌격으로 마침내 남산 요새의 좌익을 함락시키는 전과를 거뒀지만 훗날 뤼순 요새 공략을 맡은 노기 마레스케 중장의 제3군은 이 전훈을 전혀 반영하지 못하고 말았다.

뤼순 요새를 포위하는 일본 제3

 

뤼순의 외곽인 금주성과 남산을 함락시킨 일본군이었지만 본토의 대본영은 제2군의 보고를 받고 믿을 수 없다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이거 전문( 電文 )의 내용이 잘못된 것 아닌가? 300명을 3,000명으로 적은 것인가 말이야?”

센코쿠지다이( 戰國時代 ) 이래 단 한 차례의 전투에서 순식간에 3,000명에 달하는 사상자를 냈다는 것을 그들은 믿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일본군은 그제야 근대전이라는 것이 어떠한 것인지를 뼈저리게 깨달았지만 깨달았다는 것과 그것을 앞으로의 전투에 반영하느냐의 차이는 매우 큰 것이었고 당시 일본군의 입장에서는 반영하기를 기대한다는 것이 곤란했다.

하지만 일본군에게 막대한 피해를 입히고 퇴각한 러시아군도 그다지 녹록한 입장은 아니었다.

뤼순 요새 사령관인 아나톨리 미하일로비치 스테셀 중장은 비록 벼락치기로 축성했다고는 하지만 위력적인 중포와 다른 서유럽 국가들보다 앞서 대량으로 도입한 M1893 맥심 기관총을 다수 배치했음에도 불구하고 금주성과 남산의 요새가 그토록 허망하게 함락되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

더욱이 외곽에 위치한 다롄에 주둔한 부대가 급하게 퇴각하는 통에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를 파기하지 않고 그대로 방치하는 큰 실수를 저질렀다.

이것은 이 막대한 양의 군수물자들이 일본군의 손아귀에 들어간다는 셈이었으니 러시아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죽쒀서 남주는 격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스테셀 중장에게 있어 다행인 것은 오쿠 야스카다 대장의 일본 제2군이 뤼순 요새 공략보다는 북진하여 요양에 위치한 러시아 육군의 주력과 대결전을 벌인다는 것이 기본 임무였다는 것이었고 금주성과 남산을 점령하자마자 곧 부대를 북쪽으로 진군시켰다는 점이다.

일본 육군 입장에서는 어디까지나 러시아 육군의 주력이 당면한 적이지 뤼순항에 틀어박힌 러시아 극동함대와 요새 수비대 따위는 포위해 아사시켜버리면 그만이었다.

하지만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이 이끄는 일본 연합함대를 위시한 일본 해군의 입장에서 뤼순항에 입항해 있는 극동함대는 분명 해양국가인 일본에게 있어 크나큰 위협이었고 실제 블라디보스토크에 주둔한 극동 분함대는 수시로 출동해 일본 육군 증원병력과 군수물자를 가득 실은 수송선들을 급습해 격침시키고 있었으므로 해군의 요청을 받은 육군은 점차 이 뤼순 요새 공략의 당위성에 고민을 하게 되었다.

뤼순을 공격하는 것인가? 그렇게 되면 큰일인데

청소년 시절부터 전장에서 세월을 보냈고 이후 타이완 총독과 육군장관까지 역임했으며 1905년이면 대장으로 진급할 예정이었던 육군 참모본부 차장( 陸謀本部 次長 ) 고다마 겐타로( 兒玉源太郎 ) 중장은 난색을 표했다.

안 그래도 200만이 넘는 병력을 보유한 러시아에 비해 일본은 그 10%20만명을 보유하고 있을 뿐이었다.

뤼순 요새를 공략하기 위해 안 그래도 부족한 병력을 또다시 분산시킨다는 것은 전략상 있을 수 없는 일!

하지만 당시의 전황으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만약 뤼순항의 극동함대가 황해로 튀어나와 일본 육군의 수송선을 습격하면 안 그래도 본토에서 물자를 수송해야하는 일본의 입장에서는 치명타가 되기 때문이었다.

결국 요양에서의 결전에 투입되어도 모자라는 전력인 제1, 9, 11 보병사단이 차출되어 제3군이 편성되었다.

그래도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는 않겠지

고다마 겐타로 중장은 그렇게 생각했다. 문제는 1904년의 뤼순은 1894, ·일전쟁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막강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탈바꿈했다는 점이었지만……

콘크리트와 철조망, 중화기로 중무장한 난공불락의 요새, ‘포트 아르투르뤼순!!

러시아가 포트 아르투르라 명명한 뤼순은 랴오둥 반도 전면의 금주 반도 첨단에 위치하고 있는 군항이다.

지금도 뤼순항을 감제하고 있는 고지군은 청 왕조 시절에는 독일인 설계 기사가 설계해 축성한 요새 외에 이렇다 할 방어 거점이 전무한 곳이었지만 러시아가 이곳을 조차한 후 포트 아르투르라 명명하면서 뤼순은 1894년 청·일전쟁 당시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한 난공불락의 요새로 변해갔다.

이룡산( 二龍山 )과 동계관산( 東鷄冠山 ), 송수산을 위시한 주요 고지에는 견고한 콘크리트 보루로 보호받는 중포들이 포진한 견고한 포대들이 위치해 주위 고지로 기어오르는 적병들에게 강력한 포탄의 세례를 퍼부어줄 준비를 갖추고 있었고 고지로 향하는 저지대에는 전기식 철조망을 비롯한 두터운 철조망의 장벽이 가설되었다.

그리고 그 후방에는 콘크리트 벙커와 보루들이 일정 간격으로 배치되었는데 이 벙커가 뤼순 전투에서 숱한 일본군을 살육한 사신으로 등극했다.

그 원인은 바로 이 벙커와 보루에 2~3정씩 배치된 M1893 “맥심중기관총이었다.

러시아는 일찍이 다른 유럽 국가들보다 대량의 맥심 기관총을 도입해 자국군에 배치했고 특히 극도로 험악해지는 일본과의 관계로 점차 일본이 도발할 가능성을 대비해 대량의 맥심 기관총과 중포를 극동으로 배치시킨 것이다.

특히 금주성과 남산의 방어선이 하루 만에 붕괴되자 충격을 받은 스테셀 중장은 각 포대와 보루를 보강했고 야전 축성의 달인 콘트라첸코 소장은 그 임무를 능숙하게 수행해 냈다.

각 포대와 보루는 콘크리트 옹벽으로 보호를 받으며 지하 공간까지 가설해 쉽사리 노출이 되지 않도록 높이가 낮춰졌고 각 포대와 보루 사이에 지하 통로까지 가설되었다.

이 때문에 일본군의 격렬한 포격에도 불구하고 벙커와 보루로 대피한 러시아 육군은 거의 피해를 입지 않았다.

그 동안 일본 육군에서는 제3군 사령부의 편성을 완료했다. 사령관은 조슈 출신인 야마가타 아리토모 원수의 추천으로 노기 마레스케 중장이 임명되었다.

하지만 그는 근대전을 지휘하기에는 부적합한 인물이었고 이는 같은 조슈 출신인 고다마 겐타로 중장조차 염려하는 부분이었다.

이 때문에 제3군 참모장에 독일의 참모본부에 유학했던 포병과 출신의 이지치 고스케 소장이 배치되었는데 이 인사가 그야말로 최악이었던 것이다.

포병 출신인만큼 요새 공략에는 그보다 더 적합한 인물이 없었겠지만 바로 이 인사로 인해 일본 제3군은 뤼순 고지군에 시체의 산을 쌓았던 것이다.

일본 연합함대는 뤼순 요새를 봉쇄하면서 숱한 포대와 벙커들로 도배를 하다시피 한 고지군 중 유일하게 민둥산으로 남아있던 후석산 산정의 해발 203m의 고지, 바로 203 고지를 발견했고 제3군에게 “203 고지를 점령해 달라!”고 요청한 것이다.

이것은 이 민둥산이 단순히 아무런 방어거점이 없어서 그런 탓도 있지만 그보다는 이 203 고지의 위치가 뤼순항을 손바닥 보듯 감제할 수 있다는 점이 더 컸기 때문이다.

연합함대 참모인 아키야마 사네유키 소좌는 왜 러시아 육군이 다른 고지들은 전부 벙커와 포대로 도배하면서 저 요충지를 그대로 놔두고 있는지 의아해했고 이를 상부에 보고했으며 당연히 해군은 제3군에게 다른 고지를 공략할 필요 없이 저 203 고지만 공략해 달라는 요청을 한 것이다.

문제는 바로 무능의 극치, 이지치 고스케 소장이 딱 잘라 거절해 버린 것이다.

"육군은 육군만의 작전이 있다. 굳이 해군에서 요청하지 않아도 우리는 이미 저 요새를 효과적으로 함락시킬 작전을 세워둔 지 오래다."

그런데 하필 그 작전이라는 것이 러시아군이 요새화시킨 북쪽의 이룡산과 동북부에 위치한 동계관산 사이를 치고 들어가 여기를 돌파해 단숨에 뤼순 시내로 밀고 들어간다는 그야말로 허무맹랑하기 그지없는 것이라는 점이다.

이지치 고스케 소장은 러시아군이 뤼순 요새를 구성하는 각 보루와 포대, 벙커에 그토록 많은 M1893 맥심 중기관총과 중포들을 배치했다는 것을 간과한 것이었고 이것은 앞으로 155일 이상에 걸친 대혈전을 암시했다.

사선으로 무작정 달려드는 일본군, 뼈아픈 최초 공세의 실패

도고 헤이하치로 제독은 뤼순 요새와의 포격전을 경험하며 해안포대의 중포가 고지에 위치한 포대에도 고스란히 배치되어 있을 것을 충분히 예감했다.

요새와의 포격전은 함대를 지휘하는 그에게 있어 결코 탐탁치 않은 임무였지만 육상에서 공격하는 데는 그만큼 사상자가 많이 발생할 뿐더러 어중간한 야포나 산포로는 쉽게 공략이 어렵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아무리 육군이 강력하게 타격한다고 해도 저런 위력의 중포들이 대량으로 배치되어 있다면 쉽게 돌파가 어려울 것이야. 그렇지, 우리 중포대를 배속시켜 줘야겠군

이리하여 이지치 고스케 소장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구로이 데이치로 중좌가 이끄는 해군 중포대가 제3군에 배속되었다.

공세에 앞서 1904616일을 기해 제3군은 뤼순 요새 사령관 스테셀 중장에게 항복을 권고했다가 도리어 요새 수비대의 사기만 올려주는 실수를 저질렀다.

그로부터 약 2개월 동안 제3군은 공세 준비에 돌입해 마침내 1904819, 포병의 공격 준비 포격 하에 제1차 공세가 시작되었다.

3군 병사들은 제식 소총인 30년식 소총에 착검한 뒤 일제히 뤼순 요새를 향해 돌격해 들어갔지만 그 결과는 너무나도 참담했다.

이룡산과 동계관산

  

2013년 07월14일 03시4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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