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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대왕함과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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빰빠라빠 빰~  빰빠라빠 빰~"
기병대의 나팔소리가 핸드폰에서 들려온다.  반가운 사람에게서 전화올 때 들리는 내 핸드폰 소리다.   급하게 핸드폰을 꺼내서
"예, 안녕하세요. 고성혁입니다."
"이번에  세종대왕함 타고  함상토론회 취재가지 않을실래요?"
"진짜로요?  당연히 가야죠."

이지스함을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에 설레는 마당에 직접 타고 나간다니 이건 크나큰 행운이자 영광이다.
한국해군의 꿈의 함정인 세종대왕 이지스함은  나에게 이렇게 갑자기 다가왔다.

날짜는  5월 14일과 15일  1박2일다.  인기프로 1박2일과 같은 포메이션이라서 더 기분이 좋다.

사실 어른이 되고나서는 그렇게 손꼽아 기다린 날이 없어져 버렸다.  어렸을때 좋아하던 명절이나 달력에 빨갛게 칠해진 무슨 기념일은   오히려 스트레스로 다가오기 시작한 것은 벌써 수십년이 더 된 터이다.  그만큼   어떤 날을 손꼽아 기다려 본적이 까마득한 옛날이다.

 

특히 5월달은  더더욱  끔찍하다.  어린이날에  어버이날, 그리고  스승의 날과  연휴등등해서 주머니에서 돈나가는 날만 잔뜩 끼어있으니 5월은 달갑지 않은 달이다.  그런데 2009년의 5월은 다르다. 왜냐하면  5월 14~15일은 내가 대한민국 해군의 자랑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에 승선하는 날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소풍가는 아이처럼 손꼽아 기다린 5월14일, 나는 새벽에 일어나서 집을 나선다. 

 

일찍 도착한 국방부앞에는   버스가 기다리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버스에 올라 짐을 풀자  정확히 8시 20분에 버스는 세종대왕함이 머물고 있는 동해항으로 출발한다.  세종대왕함과의 만남은 나에겐 두번째의 만남이 된다. 2007년 세종대왕함이 진수식을 하던날 그때 만난 후 이제 다시 보게 되는 것이다.  그때 처음 세종대왕함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진수식장에서 세종대왕함을 부럽게 보던  영국과 호주, 그리고 여러 국가 해군 武官의 시선을 나는 잊을 수 없다. 하와이 인근해상에서 펼쳐지는 림팩훈련에  1,200톤급의 함정을 파견했던 우리해군을 보고 cute navy라고 부르던 그들이었다. 그런데 세종대왕함 진수식이 있던 그날, 그들은  오히려 한국해군에게 부러움의 시선을 보냈다.  난 그 시선을 절대로 잊지 못한다.   세종대왕 진수식 당시만 해도 영국은 이지스급의 방공함을 보유하고 있지 않을 때였다.

그런 세종대왕함이 어느덧 성장해서  우리를 초청해서 태우고 바다에 나간다니  이건 감격 그차체다.  마치 처음 세상에 나와서 울음을 터트린 갓난아기가 어느덧 성장하여   대학 졸업식장에서 부모를 등에 업고 사진을 찍는 그런 기분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동안 버스는 어느덧  1함대에 도착한다.  그러자 눈앞엔  눈이 부실정도로 햇빛을 받고 있는 세종대왕함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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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손님을 맞을 준비를 하고 있는 세종대왕함과 승조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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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 내가 진짜 이지스함 세종대왕함을 타보는 구나"  이런생각을 하면서 버스에서 내린다.  앞에는 새하얀 정복을 멋있게 차려입은 해군장병들이 양쪽으로 도열해서 맞아준다.  거수경례를 받으면서 세종대왕함에 오른다. 세종대왕함에 첫발을 내딪는 순간 달에 첫발을 디딘 닐 암스트롱의 말이 불현듯 떠오른다.   '오늘 나의 작은 발걸음이 인류의 큰 도약이 될 것입니다'라는 말처럼 오늘은 분명히 한국해군의 큰 도약을 위한 그런 날이다라는 생각이다.

 

많은 내외 귀빈가 인사들이 세종대왕함에서 거행되는 제 13회 함상토론회에 참석하기 위해서 속속 자리를 잡는다.  그리고 개회사에 이어서  해군 참모총장 정옥근제독의 축하사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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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13회 함상토론회 축사를 하고 있는 정옥근 해군참모총장

 

그리고 이어서 김태효 청와대 외교안보서석실 대외전략비서관의 기조연설이 이어진다. 그는 2년전 대조영함상에서 있었던 함상토론회에서 토론자로 참석해서  해군에게 앞으로는 항공모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역설했었다.

여기서 잠시 2년전의 함상토론회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 않을 수 없다.  그 이유는 함상토론회에 참석해서 해군발전을 위해 역설한 분들은 하나같이 보다 영향력 있는 자리로 영전했기 때문이다.

2년전 해군의 항공모함 도입을 적극적으로 피력했던 성균관대 김태효 교수는 현재 청와대 대외전력수석비서관이고  또 해군에 대한 예산 증액을 발제로 했던 선문대 정옥임교수는 현재 한나라당 의원이다. 또 해군무기체계에 대한 발전방향을 제시했던 한남대 김종하 교수는 현재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실 무기체계 자문위원이다.  결과론적인지는 몰라도  해군 함상토론회가 마치 인재 등용문처럼 보인다.   이제 본격적으로  함상 토론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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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함상토론회 주제 발표자들

 

제 13회 함상토론회의 주제는 "손원일 제독의 해군 창군정신과 한국 해군력의 발전"이라는 주제다.

첫번째 발제자는   동국대 사학과  윤명철 교수다.  윤명철 교수는 삼국시대의 해양사 부분에서 절대적 권위를 인정받고 있는 교수다. 특히 저서중에서  고구려 해양사 연구라는 책이 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의 영토확장에  고구려 수군이 절대적 역할을 하였음을 실질적 海路연구를 통해서 밝히신 분이다.   또한  삼국시대 각국의 운명을 가른 것이  해로장악에 달렸다고 역설하신 분으로서 해군력의 중요성에 대해서만큼은  그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다.

 

윤교수는   손원일 제독의 생애와 더불어서  민족과 해군력의 상관관계에 대해서  인상깊은 주제발표를 하였다.

특히  군인으로서의 결단력 뿐만 아니라  손원일 제독의  감추어진 인간애로서의 관용을 한국전쟁의 실화로 설명하는 부분은 매우 손원일제독의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준다.

 

그 일부분을 소개하면 이렇다.

 

손원일 제독은 해방을 맞이하자 첫 사업으로서 일본인이 버리고 간 배를 1주일에 걸쳐 수리와 정비사업을 마친 후, 4척의 배에 나눠 타고 일본에서 귀환하는 동포들을 수송했다.  이렇게 첫 출발한 해군에서 손원일은 부역자 처리문제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였다.  서울을 탈환한 자리에서 그는 해병대 사령관인 김성은에게 이렇게 말했다.

 

"포로하고 부역자 말인데,  절대로 죽이지 마.  통영에서는 아주 잘 처리하던데, 여기서도 그렇게 하도록 해. 포로들을 함부로 죽이지 말고 부역자들은 반드시 경찰에 넘기도록 해"

 

"공산군에 협력한 사람이라도 이북으로 도망가지 않은 사람은 함부로 죽이지 마라"

 

왜 해군에서 손원일 제독을  해군의 아버지로서 추앙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개인적으로는 윤명철 교수의 고구려해양사 연구라는 책을 탐독했던 터이라   윤명철교수와 한번 만나봤으면 하는 막연한 바람을 가지고 있었는데 해군 함상토론회가  그런 기회를 나에게 주었으니 이것또한 세종대왕함이 나에게 준 2번재 행운이다.

 

제13회 해군함상토론회의 주제인 손원일 제독에 대해서 윤명철 교수는  제독의 생애와 해군창설과 그 의의에 대해서 인상깊은 주제 발표를 하였다.  손원일 제독이라면  해군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 아는  한국 해군의 아버지이다. 

 

흔히 한국전쟁때 북한의 남침의 예봉을 꺽은  백선엽장군의 다부동 전투나  그리고 맥아더의 인천상륙작전, 청송부대의 용문산 전투를 대표적 전투로 꼽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전략적으로 결정적으로 기여한  해군 백두산함의  부산 앞바다에서 북한 무장수송선 격침을 말하는 이는 많지 않다.  만약 해군이 開戰初 북한 무장수송선을 격침하지 못했더라면,  600여명의 북한특수군이 그대로 부산인근에 상륙했더라면 어쩔뻔 했는가? 이렇게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해군이 대한민국을 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다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렇게  함상토론회의 주제발표를 듣는 와중에  주변을 살펴보니   같이 왔던 기자단들이 안보인다.
"앗뿔사.  함상취재차 모두 자리를 떳구나" 하는 생각이 들면서 나는 바쁘게  토론회 자리를 나왔다.

세종대왕함 함수로 가기위해선 艦尾 헬게갑판을 내려서 선수갑판쪽으로 이동해야 한다.  세종대왕함을 내리고 탈때마다 도열해 있는 해군장병들의 거수경례가 붙여진다.  민간인 신분으로서 하얀제복을 차려입은 장병의 거수경례를 받자니 약간 쑥스럽기도 하지만 그래도 기분은 참 좋다.  가볍게 목례로 답하고 얼릉 선수갑판쪽으로 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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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근접방어체계인 램 미사일과 세종대왕함의 함교.  램미사일 발사대엔 아직 4기의 램미사일만 탑재된 상태다.

 

 

이미 앞서간 취재진들은 막바지  방송 취재 준비중이다.  그 틈에 얼릉 나도 카메라 셔터를 누르면서 동시에 세종대왕함의 이모저모를 온몸으로 살핀다.

스텔스 효과를 위해 각이 진 MK45 MOD 4 함포는 미해군에서 채택하기 전 우리가 더 먼저 탑재한 가장 최신의 함포다. 그 뒤로는 SM2 미사일을 품고 있는 VLS 수직 발사기가 넓다랗게 자리잡고 있다.  만약  세종대왕함의 SM2 미사일이 본격적으로 불을 내뿜는다면  북한의 공군력은 치명적 손상을 당할 수 있을 만큼의 위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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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세종대왕함의 선수 함포와 수직미사일 함교모습

 

SM2 미사일이 자리잡고 있는 VLS를 지나서 그 위쪽에 자리잡고 있는  근접 방어체계인 램미사일이 눈에 들어온다.  아직 4발만 장착되어 있는 모습이다.  SM2미사일의 방어망을 뚫고 들어오는 적항공기나 미사일은 바로 이 램미사일이 담당하게 된다.  현재 램미사일은  KDX2급 구축함에도 장착되어 있는 우리에겐 친숙한 근접방어 미사일이다.

그리고 좀더 고개를 들고 위를 쳐다 본다.   커다란 함교 양옆에   8각형의 대형 레이다가 나의 눈에 클로즈업된다.  바로   제우스의 방패에서 유래된 이지스 레이더이다.  우리 해군이 세종대왕함을 갖기전에는 일본 공고급 이지스함을 보면서 솔직히 조금 부러웠 했다. 아니 많이 부러워 했다.

 

 인터넷 속어로 "부러우면 지는거다"란 말이 있다.  우리가 세종대왕함을 보유하기 전엔 부러웠지만 이제는 부럽지 않다. 우리도 있으니까.하하하. 

 

다음의 사진이 바로 세종대왕함의 이지스 레이더이다.   제주남방 해상에서도  원산에서 이착륙하는  북한 전투기를 탐색할 수 있는 이지스 레이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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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질설명 :  세종대왕함의 핵심인 AN/SPY-1D 위상배열 이지스레이더. 현재 일본의 아타고급과 같은 7.1베이스라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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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함교의 이지스 레이더와 함교 마스터

 

언론에 보도된 바에 따르면  북한이 미사일 발사를 하기 전날  북한 미그23 전투기의 추락을 제일 먼저 감지한 것도 바로 세종대왕 이지스함이란 보도가 있었다. 그만큼 능력이 탁월한 레이더이다. 

 

그런 레이더를 말로 어떻게 표현할까 고민해 본다.  결국 이렇게 말하고 만다.

보면 볼수록 좋다.   그냥 좋다.  자꾸 봐도 좋다.  또 보고 싶은 것이 바로 세종대왕함의 이지스레이더이다.   무슨 말이 필요할까 싶다.

 

그리고 좀더 눈을 올려 본다.  함교 마스터이다.   많은 전자장비와 항해장비가 붙어있는 함교 마스터이다.  바다 멀리서 제일 먼저 보이는 함교 마스터이다.  미국 알레이버크와 비슷한 구조이다. 해군의 설명으로는  함교마스터는 알루미늄 재질로 구성되어 있기때문에 내구성을 높이기 위해서 보강 버팀대를 덧대었다는 것이다.

 

그 설명을 들으면서 나의 목은 더 뒤로 젖혀진다. 함교마스터 제일 꼭대기에 자리잡고 있는 둥그런 구조물을 카메라에 담기 위해서이다.   우리나라 해군이 이지스레이더와 더불어서 처음 보유하는 신장비이다.  이름하여   데이터링크 16시스템이다.  실시간으로 전투정보를 공유할 수 있는 장비이다.
어떤면에선 이지스레이더를 더욱 강력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장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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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함교 마스터의 최상부에 자리잡고 있는 데이터링크16 시스템

 

현재 한국군내에서 세종대왕함에 탑재된  데이터링크16시스템과 연동되는 무기 플랫폼은 F15K가 유일하다. 무기시스템의 네트웍크화를 통한 무기체계의 온라인화를 이룰수 있도록 해주는는 것이 데이터링크16 시스템이다. 세종대왕함은 하늘에서 작전하는 F15K가 얻은 정보를 데이터링크 시스템을 통해서 실시간으로 볼 수 있다.  가령 북한상공에서 작전중인 F15K를 통해서  동해 한가운데 떠 있는 세종대왕함은 그대로 북한상공의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앞으로 조기경보통제기까지 더해진다면 그야말로 입체적인 작전이 가능해 진다.

 

뒤로 젖힌 목이 뻐근해 올 시간  해군 공보관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자 모두들 다음 장소로 이동하시죠.  YUB를 타고 세종대왕함을 밖에서 취재할 것입니다."

해군의 배려다. 해군의 항만 경계를 주 임무로 하는 작은 YUB라는 보트를 타고  세종대왕함을 바다에서 조망할 수 있는 기회다.  YUB의 작은 선체에 기자단이 오르자 배가 기우뚱한다.  그리고 이내 엔진에서 매캐한 배기연기를 뿜으면서  세종대왕함쪽으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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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해군의 항만경비를 담당하는 소형보트인 YUB에서 본 세종대왕함.

 

바다쪽에서 항구에 정박하고 있는 세종대왕함을 올려다 보니 그 크기가 더욱 커보인다.  연방 카메라 셔터를 누루지만  역광이라서 시커멓게 보인다. 안타까운 생각이 앞선다.  YUB보트가 세종대왕 함수 정면쪽으로 이동하자  햇빛이 측면에서 세종대왕함을 비추며 보기 좋은 모습이 된다. 높이 치켜든 함수의 모습과  햇빛에 반사되는 이지스 레이다가 마치 선텐을 즐기는  근육질의 남성을 연상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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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세종대왕함에 모두 16기가 탑재된 대함미사일. 

 

해군의 안내로 함상취재를 마치고 다시 함상토론회장소로 올라온다.  토론회는 막바지로 치닫고 있는 가운데  나는 토론회 뒤쪽에 살며지 자리를 잡고  잠시 숨을 고르고 있다. 그런데  내눈에 항구를 빠져나가는 잠수함 1척이 눈에 들어온다.  바로 다음날 함대 훈련에 참가하기 위해 미리 출동하는 대한민국 해군의 209급 잠수함이다.  영화도 예고편이 더 흥미있듯이  딱 그런 묘미를 선사하는 잠수함의 출동이다.  아마도  잠항하여 내일 있을 함대 기동훈련에 참가하기 위해서 미리 출항하는 것으로 보인다.  아무튼 그렇게 처음으로 209 잠수함이 항구를 빠져나가는 것을 보는 맛이 아주 솔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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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해상훈련을 위해 미리 작전출동하는 해군의 209급 잠수함

 

무거운 카메라와 렌즈를 들고 이리저리 쉴세없이 다니니  어깨와 다리가 아파온다. 그래서 토론장 제일 뒤쪽에 자리를 잡으려니  안면이 있는  월간 신동아의 이정훈기자가 동국대 윤명철교수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이정훈 기자와는 살짝 눈인사를 하고  동국대 윤명철 교수 옆에 살며시 자리를 잡는다.   막연하게 윤명철 교수님과 삼국시대 전쟁사를 논하고 싶었는데  이렇게 기회가 주어지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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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월간 신동아의 이정훈기자(左)와   동국대 사학과 윤명철교수(右) 

 

그러다가 이정훈기자와 윤명철교수의 대화가 잠시 끊어지는 틈을 타서 윤명철 교수님에게 정식으로 인사를 드린다.

 

"안녕하세요. 윤교수님"

 

"안녕하세요"

 

"윤교수님의 고구려 해양사 연구라는 책을 무척이나 감명깊게 읽었는데 오늘 이렇게 직접만나뵈니 개인적으로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그러세요? 저의 책을 읽어주셨다니 제가 더 반갑습니다"

 

이렇게 간단한 인사말을 건네고 나서  그동안 가슴에만 담아 두었던  윤명철 교수님께 질문하고 싶었던 내용을 쏟아 낸다. 윤명철 교수님은   역사다큐관련 프로그램에 자주 나오시는 분이라서 일반인들도 한번쯤을 얼굴을 보았던 친숙한 얼굴이다.  특히 KBS 제1라디오에서 토요일자정에 방송하는 역사를 찿아서라는 다큐방송에선 자세한 설명으로 정평이 나 있는 분이다.

 

내가 윤명철 교수님에게 평소 질문하고 싶었던 내용은 바로 광개토대왕비문에 나오는 내용중 일부이다. 

 

"윤교수님, 한가지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이 있는데요   광개토대왕비문에 영락14년조입니다.


교수님께서는  영락 14년에 왜가 대방에 침입한 것에 대한 해석에서  왜 단독으로는 불가능하고 백제의 도움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고 말씀하셨는데요,  그런데 이미 그 전에 백제는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아리수를 건너서 공격함에 따라서 백제 아신왕은 항복하고  한마디로 초토화 된것으로 나오는데  과연 백제가 왜를 도울 수 있었을까요?  "

 

"그리고 또 하나 더 질문 드리고 싶은 것은  삼국지 위지 동이전에 보면  가야와 왜는 거의 비슷한 풍습을 가지고 있고 백제가 완전한 자리를 잡기 전부터 가야는 이미 우수한 철기를 바탕으로 왜는 물론이고 낙랑과 통교하는 것으로 나오는데요, 그렇다면 가야가 이미 오래전부터 낙랑과 독자적으로 통교를 하고 있었다면 왜 역시 충분히 갈 수 있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닐까요? "

 

이렇게 내가 염원하던 질문을 직접 드릴 수 있는 시간을 나는 만끽하고 있고, 내 질문에 윤명철교수님도  반갑게 화답한다.

 

"아 맞습니다. 충분히 그럴수 있습니다. 당시 한성백제가 아니다 하더라도 해상세력인 마한세력과 손잡았을 개연성은 충분히 있다고 봐야 합니다"

 

"그럴 개연성도 있겟군요.  마한과 왜의 연결성은 이미 증명된 것이니까요"


"한가지 더 질문 드려도 되겠습니까"


"예 말씀하세요"  윤교수님은 친절히 응해 주신다.  난  천금같은 시간을 그냥 보낼 수 없어서 맘속에 담아 두고 있던 질문을 드린다

 

"광개토대왕비문에 보면 왜가 신라를 공격함에  고구려 광개토대왕은 보기병 5만을 보내어 왜를 쓸어버립니다.  그런데  비문에 보면 신라를 공격한 것은 왜인데   실제로  풍비박산 나는 것은 임나가라인 금관가야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해석할 지 저도 여러가지로 살펴 봤는데요,  저의 생각은  여러가지 정황과 유물로 봐선  가야와 왜는 고대 그리스의 폴리스처럼  해상 폴리스 연합체의 구성으로 봐야 할 것 같다는 생각입니다.  그런데  지금의 한일 민족개념으로 고대 가야와 왜를 해석하기 때문에 고대사를 오히려 왜곡 한다고 전 보는데 교수님 생각은 어떠하신지요"

 

매우 민감한 주제를 당돌맞게 이부분 권위자이신 유교수님께 난 과감하게 질문을 하고 만다.


그런데 윤교수님은 너무도 큰 리액션으로 화답해 주신다.

 

"정확하게 보셧습니다.  제가  [동아시아지중해와 고대일본]이라는 책에서 주장한 것이 바로 그 내용입니다."

이렇게 답하시면서  선뜻  명함을 건네주신다.  내겐 뜻밖의 선물이다. 그래서 용기를 내어서 한마디 더 말씀 드린다.


"허락이 되신다면  저 나름대로 삼국시대 전쟁을 분석한 글이 있는데요   한번 이메일로 보내드리고 평가를 받고 싶은데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꼭 보내주세요.  "

 

이렇게 윤교수님과의 대화하는 금쪽같은 시간은 순식간에 흘러간다.  이윽고  함상토론회는 종료를 알리고 잠시 휴식시간을 갖는다.  곧 이어  헬기 테크에서 이어지는 저녁만찬이다. 

 

광개토대왕 비문과 고구려의 활약

 

 

 여기서 잠시 윤교수님과의 토론내용에 해당하는 광개토대왕비문의  원문을 간단히 소개하면 이렇다.

 

殘不服義, 敢出百戰, 王威赫怒, 渡阿利水, 遣刺迫城. □□歸穴□便圍城, 而殘主困逼, 獻出男女生口一千人, 細布千匹, 王自誓, 從今以後, 永爲奴客. 太王恩赦□迷之愆, 錄其後順之誠. 於是得五十八城村七百, 將殘主弟幷大臣十人, 旋師還都.

 

잔(백제의 비하)이 의로써 복종을 하지 않고, 감히 나와서 전투를 할려고 하니, 왕이 위엄과 노여움으로 아리수를 건너, 자박성에 파견하였다. □□□□ 성을 둘러 싸자, 잔주가 괴롭고 핍박을 받아 남녀 일천명과, 세포천필을 받치며, 무릅을 꿇고 스스로 맹세하길 이제부터 따르겠습니다 하니 영원히 노비나 손님으로 간주하였다.
태왕께서 은혜로써 □하고 미혹한 허물을 용서하니, 그 후로 정성으로 따름을 기록한다. 오십팔성과 칠백촌을 얻고, 백제왕의 아우와 대신 열명과 함께 서울로 돌아 왔다.

 

八年戊戌, 敎遣偏師, 觀]帛1)愼土谷, 因便抄得莫□羅城加太羅谷, 男女三百餘人. 自此以來, 朝貢論事. 九年己亥, 百殘違誓與倭和通, 王巡下平穰. 而新羅遣使白王云, 倭人滿其國境, 潰破城池, 以奴客爲民, 歸王請命. 太王恩慈, 矜其忠誠, □5)遣使還告以□計.

 

 

팔년 무술에 편사를 파견하여 백신토곡을 살피게 하여, 막□라성과 가태라곡을 노략질 하여, 남녀 팔백여명을 얻었다. 스스로 이에 와서 조공하고, 일을 묻게 되었다. 구년 을해에 백잔이 맹세를 어기고, 왜와 통한후 한 무리가 되자, 왕이 하평양으로 순수하였다. 신라가 사신 백왕을 보내어 말하길, "왜인이 나라의 지경에 가득하여 성과 못이 부셔지고, 깨져 백성이 노비로 되니, 왕께서 돌아와 목숨을 구해주십시오."하였다. 태왕이 은혜롭고 자애로와 그 충성스런 정성을 불쌍히 여기어, 사신을 파견하여 □□로써 돌아올 것을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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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광개토대왕 비문 탁본(석회탁본)


十年庚子, 敎遣步騎五萬, 往救新羅. 從男居城, 至新羅城, 倭滿2)其中. 官軍方至, 倭賊退. □□□□□□□□□背急追至任那加羅從拔城, 城卽歸服. 安羅人戍兵□新羅城□城, 倭寇大潰. 城□□□□□□□□□□□□□□□□□□盡□□□安羅人戍兵新□□□□其□□□□□□□言□□□□□□□□□□□□□□□□□□□□□□□□□□辭□□□□□□□□□□□□□潰□□□□安羅人戍兵. 昔新羅寐錦未有身來論事, □國 上廣開土境好太王□□□□寐錦□□僕勾□□□□朝貢.

 

십년 경자에 보병과 기병 오만을 파견하여, 가서 신라를 구하였다. 남거성에서 나아가 신라성에 이르렀는데, 왜인이 그 가운데 가득하였다. 관군이 이르자 왜적은 물러갔다. □□□□□□□□□ 급히 뒤쫓아 임나가라에 이르러 발성까지 쫓으니, 성이 곧 복속하자 돌아왔다. 안라인으로 □와 신라성, □성을 병사로 지키게 하자, 왜구가 크게 무너졌다. □□□□□□□□□□□□□□□□□□□□□□□□□□□□□□□□□□□□□□□□□□□□□□□□□□□□□□□□□□□□□□□□□□□□□□□□□□□□□□□□. 옛날 신라 매륵이 직접와서 나라의 일을 보고하지 않았는데, 국강상광개토태왕이 매금에게 □□□□□□□□조공하였다.

 

十四年甲辰, 而倭不軌, 侵入帶方界. □□□□□石城□連船□□□, 王躬率□□, 從平穰□□□鋒相遇. 王幢要截 刺, 倭寇潰敗. 斬煞無數.
十七年丁未, 敎遣步騎五萬, □□□□□□□□□師□□合戰, 斬煞蕩盡. 所獲鎧鉀一萬餘領, 軍資器械不可稱數. 還破沙溝城, 婁城, □住城, □城, □□□□□□城.

 

십사년 갑진에 왜가 법을 어기고, 대방의 경계에 침입하였다. □□□□□□□□□, 왕이 몸소 이끌고, □□하여, 평양에서 나와 □□□하니 서로 만났다. 왕이 길을 끊고 찌르자, 왜구가 무너지고 패하니, 베고 죽인자가 수도 없었다.
십칠년 정미에 보병과 기병 오만을 파견하여, □□□□□□□□□하고, 전쟁을 하니, 베고 죽이어 싹 쓸었다. 갑옷 일만여개를 얻고, 군장비는 셀수 가 없었다.
돌아오는 길에 사구성, 누성, □주성, □성, □□□□□□성을 깨뜨렸다."

 

함상에서의 저녁 만찬

 

저녁 만찬은 뷔페식이다.  자유롭게 자리에 앉는데 각 테이블마다 현역 해군지휘관이 동석을 하는 시스템이다.  나는  안면있는 기자와 해군메니아와 함께 테이블에 앉는다.  해군의 발전을 위한 귀빈의 축사와 더불어서 건배가 몇차례 진행된다.

작년까지는  해군의 건배엔 항상 "세계로 미래로"라는 구호가 붙여졌었다. 건배 제의자가  선창으로 "세계로"라고 부르면  만찬 참석자는 모두 큰소리로 "미래로"라고 화답하는 건배구호였다. 그러나 올해부턴 해군의 건배구호가 달라졌다. 새로운 해군의 구호는 "해군의 힘,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이다.  건배구호로는 조금 긴 느낌이 든다.  그래도 건배선창을 하니 새로운 맛이 난다.

 

스피커로 만찬이 무르익을 무렵이다.


"지금 새로운 건배제안을 하겠습니다. 큰소리로 화답해 주시기 바랍니다"

 

만찬 참석자 모두가  크리스탈 잔에  음료를 따른 다음 높이 치켜 세운다.


스피커에서  건배제의자의 큰 소리가 흘러 나온다.

"해군의 힘~"  그러자  모두가  "대한민국의 미래입니다" 


그리고 여기저기서 "쨍그랑 쨍그랑"하며 술잔을 부딪히면서 건배를 한다. 

우리 테이블에는 12전대장님이 호스트로서 동석을 한다.  다음날 있을 1함대의 기동훈련을 직접 지휘하신고 한다.  다부진 체격과 다소 검게 그을린 얼굴에는 해군과 함께 한 세월을 느낄수 있을 정도다    가볍게 자기소개와 인사를 하고 일단은 맛있게 만찬을 즐긴다. 여기저기서 포도주와 맥주잔이 오고가면서 初面의 서먹한 기운이 가시기 시작하면서  12전대장님께 질문을 드린다.

 

"전대장님, 내일 울릉도로 간다고 하는데요, 사실 저의 외가가 울릉도입니다.  제가 국민학교 다니던 때는 울릉도를 가려면 포항에서 400톤짜리의 연락선을 타고 무려 10시간을 파도에 시달리면서 간 기억이 있는데요  이렇게 큰 배를 타고 다시 울릉도를 보게 된다는 것이 꿈만 같습니다" 

 

'울릉도가 외가이시군요.  파도 참 무섭죠"

"전대장님 파도에 대해서 경험한 이야기 한번 듣고 싶습니다."

 

"벌써 오래전 이야기인데요,  해외 순항훈련때  대서양을 지나던 때가 지금도 생생합니다. 파도가 어찌나 높던지  순항훈련 부대의 함정이 제각각 뿔뿔이 흩어져 버린겁니다. 무전으로만 위치를 파악하고 파도가 잠잠해질때까지 각각 항로를 유지할 수 밖에 없었는데요  그건  파도가 높을땐 함정의 항로변경을 잘 못하다간  함정이 전복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방향타를 틀다가 측면에 파도를 잘 못 맞으면 배가 전복될 수도 있기 때문에  파도를 정면에서 맞으면서 계속 항해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 버리는 겁니다."

 

"세종대왕함은 재원을 보니까 파고가 14미터까지 견딘다고 하던데요"

"예 맞습니다.  설계가 그만큼 잘 된 함정이죠.  포항급같은 경우는 파고가 4~5미터만 되어도 피항을 해야 하는 시절도 있었는데 한마디로 격세지감입니다"

이런 대화가 오가던중  울릉도 동북방에서  우리의 해군 알류트 헬기가 북한 간첩선 모함을 격침한 이야기로 話題가 흐른다.   그것이 83년도의 일이다.   알류트 헬기이야기가 나오자 난 얼마전 전쟁기념관에서 본 알류트 헬기 이야기를 꺼낸다.

 

해군 알류트 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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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용산 전쟁기념관에 전시된  해군의 알류트 헬기. 측면에  북한 무장간첩선을 격침시켰다는 증표인 킬마크가 그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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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1983년 8월 13일  울릉도 동북방 해상에서 북한 간첩모선을 격침시킨 킬 마크. 이 사건 이후 북한은 해상에서의 무장간첩선 침투를 거의 포기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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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알류트 헬기를 탑재했던 강원함. 강원함에서 이륙한 알류트 헬기가 북한 간첩모선을 격침시켰다. 

 

"전대장님.  며칠전 전쟁기념관에 갔었는데요, 한쪽 구석에 헬기를 전시해 놓고 있는데 가서 자세히 보니까 글세  83년도에 울릉도 근해에서  간첩선을 격침시킨 바로 그 알류트 헬기가 전시되어 있다라구요.  옆에 킬마크까지 붙여놓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설명이 없는 겁니다.  자세한 설명을 붙여 놓던가 말이죠.  저야 그 마크가 무슨 뜻인지 잘 알지만  일반인들은 아무것도 모르고 그냥 만지고 그러던데요  그거 해군 박물관으로 옮겨서  더 보관을 잘하고 해군들에 대한 교육자료로 사용하면  더 좋겠더군요"

 

이렇게 말하면서  폰카에 담았던  알류트 헬기를 전대장님께 보여 드리니 전대장님은 깜짝 놀라며

"아 그렇습니까?  미처 몰랐네요. 한번 해군 상부에  건의 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대화가 오고가는 사이에  저녁 뷔페는 끝을 맥고 있었다.

 

 

침실배정과  출항

 

이제 세종대왕함에서 1박을 하는 우리들에게  침실이 배정되는 순서다.  우리 일행은 14승조원실에 배정이 되고  그곳에 인솔장교를 따라 간다.   갑판에서  좁은 사다리로 이어지는 통로 2개층을 내려가면서 함내의 좁은 통로를 통해 간다. 복잡한 함내 구조물과  시설물들이 눈에 들어온다. 잠시라도 방심하면  머리를 부딪히거나 발에 걸릴 수 있다.  신경 바짝 차리고 발걸음 빠른 안내장교 따라가기 바쁘다.  이윽고 도착한 14승조원실이다.

캐비넷같은 철제 침대가 3단으로 침대를 구성하고 있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는 2층이다.  매우 좁은 침대다. 경하배수량 7.600톤의 대형 이지스 함이지만  각종 전투장비를 탑재하고 부대시설을 배치하다보니 큰 함정이라도 침대는 매우 좁다.  어느 함정이나 똑같이 침대는 좁다. 그러나 이 또한 두번다시 얻기 힘든 기회이다 보니  즐겁게 여장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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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항전까지는 출입이 제한되는 관계로 우리 일행은 승조원실에 붙어있는 휴게실에서 즐겁게 담소를 나누었다. 휴게실을 보는 순간 모두가 입을 쩍 벌린다.   최고급 벽걸이 TV에  그리고 TV바로 밑 탁자엔 전화기기 배치되어 있다.  그리고 휴게실 가운데는 승조원들이 가볍게 담소와 더불어서 다과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쇼파가 빙둘러 자리잡고 있다. 그리고 한쪽엔  모텔에서 볼 수 있는 소형 냉장고가 있고 그 안엔  가지런하게  음료수와 쥬스등이 들어 있다.   해군의 세심한 배려를 또 한번 느끼게 된다.

 

TV를 틀자 때마침 케이블 방송을 통해소  LG와 롯데의 프로야구가 중계중이다.  일행중에 롯데의 열렬한 팬이 있기에  분위기는 금세 달아 오른다.  이렇게 함내 승조원실에서 실시간으로 중계되는 프로야구를 볼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인공위성을 통해서 바로 방송을 수신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동해든 서해든 남해든 그 어디에서도  함정내에서 실시간으로 TV를 시청할 수 있다.

 

아주 오래전에  함정내 오락이라고는  독서와   몇번이고 되돌려 보는 철지난 비디오 테이프를 보던때와는 완전히 차원을 달리한다.  일행중에  이런 세종대왕함의 최신시설, 특히 승조원의 부대시설을 보면서 우스게 소리를 한다.


"이건 완전히 고급 모텔수준이네"  순간 모두가 박장대소를 한다. 

그리고 보니 벽걸이 TV에  작은 냉장고 그리고  모텔에서 볼 수 있는 하얀 전화기를 보니 그럴만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만큼 시설이 좋다.  그 순간  함내 스피커에선 '땡, 땡,  출항 5분전.'이란 말이 흘러 나온다.  그런데도 함내 승조원실은 조용하기만 하다.  그리고 정확히 5분후  다시 "땡, 땡, 출항, 출항"이란 소리가 들린다.  전혀 미동도 느껴지지 않는다.

우리 일행은 안내장교의 허락을 받고  후미 헬기 갑판으로 올라간다. 좁은 사다리의 난간을 잡고 마치 등산하는 기분으로 그렇게 갑판쪽으로 2개 층을 올라갔다.  중간중간  통로에 붙여진  화살표의 안내를 받아야만  갑판쪽으로 갈수 있을 정도로 함내구조는 우리 민간인이 보기엔 복잡해 보인다.

 

이윽고 도착한 헬기 테그엔 이미 여러 사람들이 나와 있다. 게중엔  출항 준비를 마친 세종대왕승조원이 찬 바다바람을 맞으며  담배 한모금을 쭈욱 빨아들이고 또 한쪽에선 동해의 바람에  일과를 마친 승조원의 담배연기가 뒤 썩이고 있다.

세종대왕함은  속도를 높이고 있는데도 전혀 그 진동이나 엔진의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다만 갈라지는 물살의 소리가 커지는 것을 보면서 속도를 높이고 있슴을 알수 있을 정도다.

옆에 있던  이무열님이 감탄사를 연발한다.

 

"아. 가스터빈의 위력이 느껴 지네요.  진동이 거의 없어요.   세종대왕함은  추진기관으로 LM2500 가스터빈 4기를 운용하고  발전기조차 별도의 가스터빈 3개를 가동하는데  진짜 조용하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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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 출항 직후  세종대왕함의 헬기격테크.  헬키 데크안에는 정리를 하는 수병들의 분주한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보니 조용하다던 대조영함에서 느꼈던 디젤의 작은 진동조차 세종대왕함에선 느껴지지 않는다.  세종대왕함이 속도를 더 높이자  얼굴에 부딪히는 동해의 바람이 더 거세진다.  입고 있던 바람막이 모자를 머리에 뒤집어 쓴다.   뒤를 돌아서 헬기 데크쪽을 보니  출항후 잔정리에 수병들이 여념이 없다.  토론회때는 자세히 보지 못했던 헬기격납고를 자세히 볼 수 있게 된다.

KDX2급과는 달리 세종대왕함은 헬기격납고가 2개로 나뉘어 있다.  그것은  가운데 수직발사기인 VLS가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1함대가 자리잡고 있는 동해항 그 탄생 비화


박대통령이 경제발전에 매진하던 시절 산업시설이라고는 하나도 없던 강원도에  삼척에 씨멘트 공장이 들어섰다. 삼척 인근의  무한한 석회광산이 씨멘트 공장의 입지조건으로는 최고였다.  여기에  문제는   씨멘트를 수출하려면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있는 큰 항구가 필수 조건인데  강원도엔 그럴만한 항구 입지조건을 가진 곳이 없었다.  고작 항구라고 해 봐야 작은 포구수준이 전부이고   단조로운 해안선은  항구건설에 최악의 조건이었다.

그래서  항구건설에 대한 대책 논의가 박대통령 주제로 열리고 있었다.

 

박대통령 : 씨멘트 수출을 하려면  항구를 건설해야 하는데  어떻게 진행되고 있습니까"

 

건설부장관 : 동해안에 항구를 건설하기엔 많은 자금이 필요하고 또  지형적으로도 많은 제약이 있습니다.  항구를 보호할 방파제를 필수적으로 만들어야 하는데  바다 바깥쪽으로 나가서 방파제를 건설하기엔 자금이 천문학적으로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박대통령 : 지금 다른 곳에도 예산을 써야 하는데 그렇게 많은 돈이 들어간다면  문제가 되는 것 아니오?  다른 방법은 없습니까?

 

건설부 장관 : 기존항구를 이용하자면  접안할 수 있는 선박이 제한될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별 뾰족한 방법이 없어서  송구스럽습니다.

 

박대통령 :으음.   항구가 마련되지 않으면 씨멘트 수출이 어려운데 그렇다고 해서 그 많은 물량을 철도로 수송할 수도 없는 노릇아니오.  상공부 장관 어떻게 생각합니까?

 

상공부장관 : 예 맞습니다.   철도로 그 무거운 씨멘트를 부산같은 항구로 수송해서 수출한다면  수출단가가 급상승하기 때문에  가격메리트가 완전히 없어지고 맙니다. 

 

박대통령 :  그걸 누가 모르오?  그러니까  아이디어를 찿는 거 아닙니까?

 

박대통령의 불호령에 여타 장관들이 모두 침묵모드에 접어 들었다. 끄때 그 침묵을 깨는 이가 있었으니 그 사람은 바로 박대통령 시절  경제발전의 브레인이던  오원철 경제수석이었다.

 

오원철 수석 ; 좋은 아이디어가 있습니다.  반대로 생각하면 됩니다.

 

그러자 모두가  눈이 둥그래져서 오원철 수석을 쳐다보았다.   박대통령 또한  오원철 수석을 보면서

 

박대통령 :  오수석이 좋은 아이디어가 있다구요?  무슨 아이디어입니까?

 

오원철 수석 ;  그러니까요   굳이 방파제를  바다 바깥쪽으로 만들 필요없이  항만을 만들면 된다는 뜻인데요   역발상으로  육지 안쪽에 배를 접안할 수 있도록  육지쪽으로  땅을 파버리는 겁니다.  그러면 굳이 방파제를 안만들어도  항구를 만들 수 있는 것이란 생각입니다.

 

박대통령 ;  (박대통령도 그 뜻을 금새 알아듯고 빙긋이 웃으며)  땅이 어떻습니까?  파내기 어려우면 곤란할 텐데요

 

오원철 수석 :  제가 조사해 봤더니  그곳의 땅은 모두  모래가 많이 포함된 땅이라서 그리 큰 힘 안들이고도 땅을 파낼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습니다.

 

박대통령 :  그럼  그렇게 빨리 시행토록 하시오

 

이렇게 되자 다른 장관들은 그저 멀뚱멀뚱 박대통령과  오원철 수석을 바라 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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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동해항의 위성사진이다. 항구의 입지조건으로는 열악한 동해안의 단조로운 해안조건을 극복하여  육지쪽으로 파 들어가서 만든 항구의 모습을 잘 볼 수 있다.  역발상의 성공작이라 할 수 있다.


동해 1함대가 있는 동해항은  인근 산업시설과 함게 사용하는 軍産 복합항이다. 그 항구의 탄생은 이런 비화가 있었다.   다른 항구와는 달리  땅을 육지쪽으로 파내서 만든 항구가 바로 동해항이다.

 

그리고 보니 박대통령 하니까 하나 더 생각난다.  한국의 대통령으로선 처음으로 울릉도를 직접 방문했었다. 당시 한국 해군에 구축함 다운 구축함으로는 처음으로 도입되었던 충무함을 타고 1961년에 울릉도를 방문했었다.  당시만 해도 한일간은 미수교 상태여서 독도를 포함하는 울릉도에 박대통령(의장시절)이 직접 방문한다는 것은 큰 의미를 지니는 것이었다.   박대통령 이후엔 아무도 국토의 막내인 울릉도에 직접 방문한 대통령이 없었다는 것이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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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박대통령이 승선하여 울릉도를 방문했던 충무함.   미국의 플래쳐급으로서 기어링급이 도입되기 전까지는 한국해군에서 가장 강력한 전투함이었다. 


울릉도와  동해의 일출

 

다시 침실로 내려와도 들뜬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서 바로 잠을 이룰 수 없다.  동료 일행들과 휴게실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벌써 새벽 1시다.  일출은 새벽 5시 7분이라고 안내장교가 알려준다.   모두가 새벽 4시반에 일어나서 일출을 감상하겠다고 모닝콜을 신청한다.

침대에 들기전에  뜨거운 물에 샤워를 마친 일행들은 모두가 감탄한다. 군함안에서 이렇게 편하게 뜨거운 물로 샤워까지 하게 될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 승조원침실마다 샤워시설이 갖추어진 세종대왕함이다. 

필자도 샤워를 마치고 침대에 들어가 누우려니   그게 쉽지가 않다.  겨우 어찌해서 들어가 누웠는데 뒤척이기 조차 힘들다.  겨우 누우니  매우 포근하다.  승조원 침실은  함내 공조시설을 통해서 일정온도가 유지되고 있다.   잠자기 딱 알맞은 온도다.  처음으로 경험하는  함정에서의 수면이다.  낮에 강행군을 했는데도 금방 잠이 오지 않는다.  가만히 누워 있으니  겨우 조금의 배의 흔들림이 느껴진다.  그만큼 세종대왕함은 안정성이 있기 때문이다.

 

소변을 누기 위해 눈을 떳더니 벌써 새벽 4시다.  다시 잠자리에 들기가 겁나는 시간이다. 만약 이때 잘못 잤다가는  세종대왕함에서 맞이하는 동해에서의 일출을  놓치기 쉽상이기 때문이다. 결국 그대로 일어나기로 했다.

 

잠시후  새벽 4시 50분 우리 일행은 모두  갑판으로 나가서  동해 일출을 기다린다.  갑판에 올라보니 눈앞엔  새벽의 어렴풋함 속에서 울릉도가 보인다.  군데 군데 마을의 불빛도 함께 말이다.  내가 어렸을때  갔었던 그 울릉도는  30년이 지난 지금도 그자리에 그렇게 나를 다시 맞이하고 있다.  잠시 눈을 감고 나는 어린시절로 돌아가 본다.

 

내가 배에서 내리면  반갑게 맞이해 주시던 외할아버지와 외할머니가 어른거린다.  어린 나를 얼싸안고 좋아하시던 외할아버지 얼굴이 눈에 선하다. 물론 돌아가신지 오래다.  새벽 동해바다 한가운데 울릉도의 어렴풋함 속에서  외할아버지의 주름핀 얼굴에 흰머리가 오버랩된다. 30여년전  10시간 넘게 파도에 시달리며 왔던 울릉도에선 늘 나를 반겨주시던 외할아버지가 계셨다.  만약 지금까지 살아계셔서   오늘  세계 최고의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을 타고 온 손자를 보셨다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하는 상념에 잠시 잠긴다. 

 

울릉도 형태만 보고서도 나는 동료 일행들에게  울릉도에 대해서 이것저것 설명을 해준다.  저곳은 송곳산, 저곳이 남양, 저곳은 세분의 神仙이 바위로 변했다는 三仙巖 등등 ...

 

이렇게 내가 설명하는 동안  동해바다 한가운데가 발그레 해진다.  하늘은 잔뜩 찌푸려 있지만 수평선 너머 하늘과 맞닿은 곳엔 발그레한 기운이 점점 붉그스레 해지더니  빨간 점하나가 살며시 얼굴을 내민다. 바로 동해의 태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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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세종대왕함에서 맞이한 동해의 일출

 

송창식의 '내나라 내겨레" 라는노래를 흥얼거려 본다.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숨소리 점점 커져   맥박이 힘~차게 뛴다~

이땅에~ 순결하게 얽힌 겨레여~

 

보라 동해에 떠오르는 태양

우리가 간직함~이~  옳지 않겠나~~ "

 

채 1절을 다 부르기도 전에   수평선 너머 전체를 붉게 물들이며  그야말로 새빨간 태양이 절반가량 떠올랐다.   마치 광고사진같은 풍경이다.   그 순간은 어떤 말도 나오지 않는다. 모두가 카메라에 동해의 붉은 태양을 담기에 여념이 없다.  나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누른다.  빨간 점하나가 금새 반원이 되더니 이내 둥근 태양의 모습으로 변한다.  너무도 빨간 동해의 아침 태양은 수평선과 떨어질 무렵 오메가를 형성한다.    일출을 배경으로  저마다 인증 사진 찍느라고 모두가 흥겹다.  그것을 보는 해군장병들의 입가에도 미소가 흐른다. 우리를 인솔한 장교도 울릉도와 일출, 그리고 세종대왕함이 어울어지는 순간은 처음인지라 함께 기념사진을 찍는다. 이 순간 만큼은 모두 한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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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세종대왕함 후미 VLS갑판에서 일출광경을 감상하는 참석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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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새벽 울릉도 주위를 일주하는 세종대왕함.   수직미사일 발사대와 함포 뒤로 울릉도가 보인다.


생명의 출발점인 태양을 맏이하는 행사를 마친 세종대왕함은 울릉도를 천천히 한바퀴 도는 일주를 시작한다.  나는 일행들에게  마치 울릉도 홍보대사라도 된 듯 울릉도에 대한 설명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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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장군 이사부, 그리고  울릉도와 동해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기록된 이사부장군의 모습

 

 삼국사기에서 이사부에 대한 기록이 처음 나오는 부분이다. 실직이라 하면 지금의 삼척지역을 말하는데 당시 신라의 동해안 지역 군사요충지로서 북방 말갈족이 동해안을 타고 신라로 침입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그에 대한 방어사령부였다고 보면 틀리지 않다고 할수 있다.  아이러니컬 하게도 21세기인 현재도  신라의 실직주에 속해 있던  동해시는  대한민국 1함대가 자리잡고 있다. 그만큼 전략적 요충지다.  

 

울릉도와 독도를 이야기 할때 신라장군 이사부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는  만약 신라 지증왕대 이사부가 울릉도를 신라에 복속시키지 않았더라면,  만약  그 울릉도를 일본이 차지했더라면  얼마나 끔찍한가 생각해보면  그 이유를 더 이상 설명하지 않아도 될 것이다.

 

여기서 잠깐 실직주 사건을 알고 갈 필요가 있다.

 

451년 눌지왕때  하슬라성(지금의 강릉)의 성주인 삼직이  실직주벌판(현재의 삼척)에서 사냥을 즐기던 고구려 장수를 공격해서 죽인 사건인데  이로 말미암아  고구려 장수왕이 대노하였고  신라 눌지왕은  고구려에게 사죄 사절을 파견하면서  수모를 겪었었다.

당시 실직주는 현재의 삼척으로서  신라 영토내 고구려 주둔지로 추정할 수 있다. 그 이유는 광개토대왕시절  신라의 요청으로 고구려가 5만병력을 동원하여 신라를 공격하는 왜를 물리치고 금관가야까지 정벌한 후 일부는 그대로 신라영토내에 주둔하면서  신라에 압력을 가했을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그런과정에서  당연히 고구려군은 신라군보다 우위를 점하였을 것이고 광개토대왕의 신라구원전쟁후 50여년이 지난 시점인 눌지왕대에 이르러서는 신라의  집권층내부에서 반고구려 정서가 싹트고 있었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   그런 연장선에서  실직주 사건을 이해하면  고구려가 신라를 구원해 준 400년으로부터 50여년이 지난 후 시점에서 고구려와 신라간의 미묘한 감정변화를 엿볼 수 있다.


어떻든 이사건 때 신라의 눌지왕은 고구려 장수왕에게  손이 발이 될 정도로 빌고 굴욕을 감내했어야 했다.  충주의 중원고구려비에도 당시 고구려와 신라의 상하 관계를 설명하는 기록이 있다. 이 실직주 사건을 계기로 신라는 고구려의 압력에서 벗어나고자 하였고 고구려와는 전통적으로 적대관계였던 백제와는 가까워 지게 되었으니  나제동맹 형성의 단초는 실직주 사건이라 할 수 있다.

 

그 후로도  고구려 장수왕은 수차례 실직주를 포함한 신라의 동해안 북쪽 변경을 공격하였지만 지증왕 6년인 서기 505년엔 실직주는 완전한 신라의 영토가 되었는데 그 기록이 실직주에 이사부를 군주로 임명했다는 기록이다.  기록상으로는 임명이지만  이사부가 실직의 고구려군을 패퇴시켰다고 보는 것이  보다 더 실체적 사실에 접근한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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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신라 호우총에서 발굴된  고구려 광개토대왕 글씨가 새겨진 청동그릇.  신라에 대한 고구려의 영향력을 단편적으로 보여주는 유물이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이사부를 실직주 군주로 임명했다는 것은 다시 말해서  이사부가 당시 동북아 최강인 고구려와 싸워 이겼슴을 뜻하고 그로 말미암아  이사부는 고구려군 생리에 대해선 누구보다 잘아는 최고 전문가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 또한 두말 할 필요 없이 신라내에서 이사부의 군사적 지위는 확고해졌다고 볼 수 있다. 

 

 

 독도는 우리땅의 주역  이사부 장군

 

 또 이사부 장군에 대해서 말할때  학자들 조차 놓치고 그냥 지나치는 부분이 있다.  신라가 동해 한복판에 있던  울릉도와 독도를 어떻게 신라땅으로 했는지 그 근본적 원인이 무엇인지 하는 부분이다.  이것또한 삼국사기에서 찿아볼 수 있다.

삼국사기 지증왕 6년에 보면 이런 기록이 있다.

[원문]
六年 春二月 王親定國內州郡縣 置悉直州 以異斯夫爲軍主 軍主之名 始於此 冬十一月 始命所司藏氷 又制舟楫之利

6 년 (AD 505) : 2월에 나라 안의 주, 군, 현을 정하였다.   실직주(悉直州)를 설치하고 이사부(異斯夫)를 군주(軍主)로 삼았는데, 군주(軍主)의 명칭이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겨울 11월에 처음으로 담당 관청에 명하여 얼음을 저장하게 하였다. 또 선박 이용의 제도를 정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이 바로  [선박 이용의 제도를 정하였다]라는 부분이다.  국가적으로 선박에 대한 제도를 정비한다는 것은 바다로 나갈 수 있는 토대가 된 것을 뜻하며  결국   바다로 나간 신라는 궁극적으로  삼국간의 경쟁에서 최종 승자가 된 기틀이 이때 만들어 졌다고 해도 무방 할 것이다.

실제로  서기 663년  백제를 지원하러 온 왜의 약 3만 병력을  섬멸한 것도 기벌포에서의 水戰을 통해서 였으며   나당 전쟁의 최종 승리를 얻었던 것도 신라가  당나라의 대규모 보급부대를 지금의 한강 하구인 천성전투에서 궤멸시킨 덕분이다.

좀더 자세히  신라 지증왕때  울릉도를 이사부 장군이 어떻게 복속시켰는지 알아보자.

 

삼국사기 권44 열전 4편에 보면 이사부편과 거칠부편이  나란히 기록되어 있다. 이사부장군은 신라 지증왕때부터 진흥왕때까지 활약하였고  진흥왕 15년 백제와 일대 격전을 벌였던 관산성 전투당시엔 신라의 병부령으로서 총 지휘를 하였다.때독도는 우리땅 이사부장군을 살아있는 역사로소 우리 가슴에 품어 보자. 그럴려면 그 열전편에 기록된 아사부장군의 기록을 그대로 적어본다.

 

 <異斯夫 이사부>

 [或云<苔宗>.]姓金氏, <奈勿王>四世孫. <智度路王>時, 爲沿邊官, 襲<居道>權謀, 以馬戱, 誤<加耶[或云<加羅>.]國>取之. 至十三年壬辰, 爲<阿瑟羅州> 軍主, 謀幷<于山國>. 謂其國人愚悍, 難以威降, 可以計服, 乃多造木偶師子{獅子} , 分載戰舡, 抵其國海岸, 詐告曰: "汝若不服, 則{卽} 放此猛獸, 踏殺之." 其人恐懼則{乃} 降. <眞興王>在位十一年, <太寶>元年, <百濟>拔<高句麗><道薩城>, <高句麗>陷<百濟><金峴城>. 主{王} 乘兩國兵疲, 命<異斯夫>, 出兵擊之, 取二城增築, 留申{甲} 士(+一千) 戍之. 時, <高句麗>遣兵來攻<金峴城>, 不克而還. <異斯夫>追擊之大勝.

 

이사부[혹은 태종이라고도 한다.]의 성은 김씨이요, 나물왕의 4세 손이다. 지도로왕(=>지증왕) 때 변경 관리가 되어 [거도]의 권모를 모방하여 말놀이로써  가야[혹은 가라라고도 한다.]국을 속여서 빼앗았다.

 

지증왕 13년 임진년에 그는 하슬라주(지금의 삼척)의 군주(軍主)가 되어 우산국을 병합하려고 꾀하였다, 그는 그 나라 사람들이 미련하고 사나워서 힘으로 항복받기는 어려우나 속임수로 항복시킬 수는 있다고 생각하였다. 이에 나무로 사자를 많이 만들어 싸움배에 나누어 싣고 그 나라 해안으로 가서 위협하기를


 "너희들이 만일 항복하지 않으면 이 맹수들을 풀어 놓아서 밟아 죽이겠다."
우산국 사람들이 두려워 하여 즉시 항복하였다.

 

이것이 삼국사기 열전편에 기록된 이사부장군과 울릉도에 대한 내용이다. 

진흥왕 2년(541년) 봄 3월, 눈이 한 자나 쌓였다. 이사부를 병부령으로 임명하고, 중앙과 지방의 군대에 관한 업무를 맡게 하였다. 백제가 사신을 보내와 화친을 청하였다. 왕이 이를 허락하였다.

 

 여기서 눈여겨 볼 대목이 이사부를 병부령에 임명했다는 부분이다.  병부령은 법흥왕 4년(서기517년)에 처음 설치되었는데 진흥왕 2년에 이사부는 병부령이 됨으로써 신라군의 총지휘관이 된 것이다.

이사부가 실직의 군주로 임명된 것이 지증왕 6년인 서기 505년인데 병부령으로 임명된 진흥왕 2년은 541년이다. 그렇다면 무려 36년의 세월이 흘렀으니 이때 이사부는 국가원로 대접을 받고 있었다고 봐야 한다.  그리고  백제와 신라의 운명을 갈랐던 관산성 전투는 진흥왕 15년인 서기 554년에 있었으니 응당 병부령인 이사부가 총 지휘를 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 된다. 


메인 하일라이트   1함대 해상 기동훈련

 

동해 일출과 울릉도 일주를 끝내고 우리는 함내 식당에서 아침식사를  떡국으로 맛있게 했다.  새벽 4시에 일어나서 2시간이상을 갑판에서 분주하게 다니다 보니 아침은 꿀맛이다.  식사후 오전 9시 반부터 시작되는 오늘의 하일라이트인 1함대 해상 기동훈련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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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1함대 해상사열 해상으로 항진중인 세종대왕함. 함교 좌현 견시수위치에서 카메라 앵글에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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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세종대왕함의 함교 우현 이지스 레이더 바로 위에서 잡은 항진모습

 

 

식사후 우리 일행은  함내 여러시설에 대한 견학의 시간을 갖는다.  지난 한미연합훈련당시  세종대왕함을 방문하였던  미해군의 이지스함 승무원들도 우리 세종대왕함을 보고 탄성을 자아냈다고 한다.  그만큼 시설이 좋다.  세세한 부분까지 기존의 함정과는 기본개념부터 다른 설계이다. 내눈에 띄었던 것은  함내 격실문이 스테인레스로 된 부분이다.  그래서 궁금한 것은 그냥 넘어 갈 수 없기에 살짝 질문해 본다.


"다른 함정은 격실문이 일반 강철인데  여긴 왜 스테인레스인가요?  스테인레스는 가공하기가 쉽지않은데 말이죠?"

"예 그것은  뒤틀림이나 강도면에서  일반 강철보다 스테인레스가 훨씬 우수하기 때문입니다. 밀실을 유지하기 위해선 그마큼 내구성과 강도가 유지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명쾌한 답변이 놀랍다.  물론 그 덕분에 단가가 대폭 상승되었다는 후문도 들린다. 역시 돈이다.

2-3개층을 올라가자  드디어 함교다.  많은 모니터가 반짝거린다.  안내장교는 

"모니터상에 일렬로 늘어선 표시를 가르키며 저 것이 오늘의 해상기동훈련을 위해 현 위치로 이동하고 있는 1함대 함정의 모습입니다."

 

자세히 보니 반짝반짝하면 뭔가가 모니터상에서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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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함대 사령관이 타고 온 링스헬기가 헬기 데크에 착함중인 모습이다. 함교에서 순간적으로 포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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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함대 사령관 승선후 다시 이륙하여 날아가는 링스헬기 

 

그 순간  함내 방송을 통해서  "함대 사령관 헬기 접근중"을 알려준다.  바로 고개를 들어보니 링스헬기가 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난 바로 카메라를 들고 함교 옆 견시창으로 갔다.  그 순간  벌써 링스헬기는  함미 헬기테크쪽에 착륙을 시도하고 있다.   정신없이 카메라 촛점을 맞추었다.   사진을 찍고나서 보니  현장감 넘치는 사진이 내 카메라에 담겼다. 그 흐믓함은 .....

 

잠시후 함내방송에선

'9시 30분부터 1함대 기동훈련 참관이 있을 예정이오니 내빈께서는 함미 갑판으로 이동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드디어 1함대 기동훈련이다.  좋은 자리를 차지하고  안내장교의 멘트에 따라서 시선을 이리저리 돌린다. 그러자 아주 멀리에서 점 하나가 움직이는 것이 보인다. 얼릉 망원경을 꺼내서 수평선너머를 살펴보니 함정이 줄지어 세종대왕함쪽으로 오는 것이 보인다.  영화에서처럼  수평선쪽에서 일렬종대로 오는 함대의 모습은 장관이다.  망원경으로 그 모습을 보는 나 자신이 꼭 함대 사령관 같은 착각이 든다.  좀 더 자세히 보니 거의 전속항진으로 오는지  함수엔 하얀 물보라가 인다. 동해의 바닷물을 양옆으로 가르면서 오는 선두의 함정은  바로 1함대의 기함인   광개토대왕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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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 1함대의 기함인 광개토대왕함을 선두로 해서 해상 사열이 진행중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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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설명 : 함대사령관이 탑승한 세종대왕함을 향해서 거수경례중인  광개토대왕함의 승조원들.

 

그것을 보니까 벌서 10여년전에  광개토대왕함의 진수식 장면이 실린  밀리터리잡지를 보면서 흐믓해하던 내 모습이 떠 오른다.  그런데 벌써  그 감동을 주었던 광개토대왕함은 우리해군에서 랭킹 3위의 자리로 이동해 있는 것이다. 이지스함인 세종대왕함, 그 다음 클래스로  KDX2,  그 다음이 광개토대왕급이다.  

 

점점 광개토대왕함이 가깝게 오자 나는 본능적으로 카메라 앵글을  맞춘다.   광개토대왕함의 우현엔 승조원들이 하얀 제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이보다 더 멋있는 그림을 어떻게 그릴 수 있겠는가? 

광개토대왕함이 지나가자  그 다음으로는  울산급 함정과 포항급 함정이 뒤따르며 지나간다.  모두 하얀 해군제복에 절도있는  거수경례를 하고 있다.  난 한쪽손에는 카메라를, 그리고 다른 손은 높이 흔들면서 해군에 화답하고 있다.

 

고속정의  경쾌한 고속 기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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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해상사열중 고속기동하는 참수리 고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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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잔잔한 파도에도 불구하고 고속기동하는 참수리 고속정은 물보라를 뒤집어 쓰기 일쑤다

 

 이렇게 초계함의 항진이 끝나자 바로 뒤로  물보라속에 파뭍힌 고속정 편대가 시야에 들어온다. 파도가 거의 없는 해상임에도 불구하고  고속정 편대가 전속항진을 하자 부서지는 물보라가 고속정 전체를 뒤덮는다.  카메라에 담는 입장에선 너무도 멋있는 장면이다.  그러나  그런 물보라속에서도 고속정 승조원의 모습은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속으로 나는 저것이 바로 대한민국 해군의 정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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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완전히 물보라에 파묻힌 참수리 고속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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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해상 사열이 끝나자  이어지는 것은  해상사격훈련이다.   광개토대왕함을 필두로 해서  127미리 함포, 76미리 함포, 그리고 40미리 함포가 차례로 불을 뿜는다.  멀리 보이는 타겟이 초탄에 명중이라  함포사격은 짧은 시간에 끝나버리고 만다.

좀 아쉬운 기분은 들지만  림팩훈련에서도 대한민국 해군의 사격술은 정평이 나 있지 않는가?  일본해자대처럼  표적 예인기를 격추하는 그런 해군이 아니다.  수많은 대간첩 작전을 통해서 다져진 한국해군의 포술은 가히 세계 1위라는 것에 추호의 의심도 가질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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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사격중인  포항급 익산함의 함미 76함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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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급부상 하는 209 장보고급 잠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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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대잠작전을 펼치는 링스헬기와 광개토대왕함.  링스헬기에선 소나부이가 내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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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광개토대왕함과  209급 잠수함의 항진

 

해상 사격과 기동을 보이는  함정을 보면서  서해교전을 떠올려 본다.  생각할 수록 안따깝다.  만약 제2의 서해교전이 재발된다면  오늘의 기동훈련처럼 초탄에 격침시켰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이번 1함대 기동훈련은 매우 다양하게 펼쳐진다.  해상 기동훈련과 사격이 끝남과 동시에 바다한가운데서 209급 잠수함이 불쑥 솟아 오른다.  일명 급부상시범이다.  공중에선  링스 대잠헬기가 호버링을 하고 있고  1함대의 함정들은  세종대왕함의 주변에서 여러가지의 기동차단훈련을 계속 실시하고 있다.  좀처럼 보기 힘든 함정들의 긴급 방향전환이 잇따른다.  스크류가 일으키는 하얀 포말이 커다란 타원을 그리면서  함정들은 이리저리 방향전환을 한다.   마치 함정의 군무(群舞)를 보는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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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 설명 : 해상사열후  세종대왕함 근처를 지나서 차단기동훈련에 임하는 광개토대왕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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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차단기동훈련중 급기동하는 익산함 

 

1함대 기동훈련의 大尾는  대테러 진압훈련이 장식했다.   소말리아 해적을 퇴치하는 바로 그 훈련이기도 하다.  해적을 비롯한 가상적이 함정을 납치했을때 해군 특수부대원들이 헬기에서 밧줄을 타고 내려서 신속하게  해적이나 테러범들을 제압하는 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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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대테러 훈련으로 광개토대왕 함미 헬기데크에 레펠하강하는 해군 특수부대요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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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임무 종료후  손을 흔들고 있는 해군 대테러 특수부대원들

 

 

광개토대왕함의 함미 헬기 데크에  헬기가 접근하더니  밧줄이 내려지고 바로  특수부대원들이 주루루룩 내려오더니 이내 함정내에 침투하는가 싶더니 벌써 함교에서 노란 연기가 피어 오른다,  테러범을 제압했다는 신호다. 

테러범들을 제압하고 나서  해군 특수부대원들은 1렬로 도열해서 우리들에게 크게 손을 흔들어 준다 우리도 화답하면서 두손을 더 크게 흔들면서 그들의 노고에   아낌없는 찬사를 보내면서 1함대의 해상기동훈련은 막을 내린다.

 

 

귀항(歸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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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설명 : 귀항하는 세종대왕함의 함미모습. 헬기 착함 유도등과 멀리 광개토대왕함이 보인다.

  

2013년 06월26일 20시5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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